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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고 싶은 너에게,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얘길 해줄게
입력 2013-04-01 |

 

편집자 주. 다음은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를 보고 교사가 되고 싶은 옛 제자에게, 한때 교사였던 글쟁이가 편지 형식으로 쓴 리뷰입니다.

 

영화 <굿 윌 헌팅>은 뻔해. 진부하기 짝이 없지. 그런데 볼 때마다 눈물이 나.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그 대사에 매번 무너지는 스스로가 민망할 정도야. 그러고 보면 진부하다는 것은, 낡아서 새롭지 못하다는 그 말은, 때로는, 감동적이어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굿 윌 헌팅>을 보고 교사가 되고 싶었단다. 

사범대 1학년 때, 교수가 모두에게 물었어. 진정한 교육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나는 속으로 대답했지. ‘진정한 교육이란 교사와 학생이 만나서, 서로 배우고, 그 상호작용으로 결국은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너는, ‘임용 시험 준비가 힘들겠지만 합격하면 안정적인 직장이니 교사가 되고 싶다던 너는, 지금 내 대답을 비웃고 있을까. 그치만 스무 살의 나는 신념처럼 갖고 있던 내 대답이 참 마음에 들었단다. 그래, 그땐 그랬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참 현실을 몰랐었구나 싶었지만 말이야 

왜 지금은 선생님을 관두고 안 하냐고 물었지? , 연극 얘기를 해야겠다. (왜 갑자기 연극 얘기냐고? 너도 알다시피 애매모호하게 말하기, 돌려 말하기가 내 특기잖니.) 얼마 전 <히스토리 보이즈>란 연극을 보았어. 거기에는 옥스브리지에 입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8명의 학생들이 나온단다. 눈치 챘겠지만 옥스브리지는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합한 말이야. 네가 지금 속해 있다는, 서울대와 고려대와 연세대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만든 SKY반의 아이들 같은 학생들이지. 이들은 헥터 선생님(최용민 분)에게 문학을 배워. 헥터 선생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회적 성공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나, 명심해라. 따옴표 열고, ‘모든 지식은 인간에게 유용하든 유용하지 않든 그 자체로 소중하다따옴표 닫고하고 하우스만의 말을 인용해 말하는 사람이야. 하우스만이 누구냐고? 영국의 시인이야. 이 이야기는 1980년대 초반 영국의 공립학교 이야기야. 그래, 지금이 아니라 1980년대 초반. 그런데도 30년 후의 내 마음을 건드렸구나 

많은 학생을 명문대에 보내 학교 레벨을 높이고 싶어 하는 교장 선생님(오대석 분)은 오직 학생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옥스포드 출신의 교사 어윈(이명행 분)을 고용했어. 젊고 비판적인 역사 교사인 어윈은 헥터와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수업을 해. 스스로 대학 입학에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는 일반 교양을 가르치는 헥터는 문을 잠그고 학생들이 정하는 자유 주제에 따라 그때그때 난상토론과 상황극을 펼치고는 하지. 어윈은 그런 헥터와의 수업에서 나왔던 것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똑같이 지겨운 답안지를 써내서는 합격할 수 없을 거라고 말야. 전략적이라니. 문학 작품을 읽고 느끼는 감동도 논술 답안지를 써내기 위해 포장해야 하는 현실이라니 

시험보다 인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헥터 선생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문학이 인생의 해독제인 것처럼 어쩌면 그의 수업은 그저 학생들의 입시 스트레스의 해독제일 뿐인 걸까 멈칫 했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어윈의 방법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토론하자고 하는 데에는 멈칫 했어. 그래, 홀로코스트에 대해 말하는 장면은 두 교사의 교육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단다. 헥터와 어윈의 공동 수업. 홀로코스트에 대해 토론해 볼까 하는 어윈과 어떻게 그걸 가르칠 수 있느냐는 헥터.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뻔한 답을 쓰지 않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히틀러를 지도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주장. 답안지를 잘 쓰든 못 쓰든 홀로코스트를 말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받았던 고통의 의미를 손상시키게 되는 거라는 주장.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말하며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절대악이 아니었다고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고 얘기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매년 5월이면 집집마다 제사를 지낸다는 광주의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니까. 나는 헥터에 마음이 기울었다가 과거에 대한 시각은 변하기 마련이라는 어윈의 말에 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어. 보이지 않아서 가장 가까운 과거야말로 제일 알 수 없게 돼버린다던 어윈. 나는 두 선생님을 보면서 어느 한쪽도 응원할 수가 없었어. 아니, 둘 다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패러독스 혹은 아이러니가 극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구나. 

무엇보다 이 극 속 네 또래의 아이들을 보는 재미가 컸단다. 저마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맑고 고운 소년 포스너(이재균 분)는 외모, 성적, 성격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스스로도 자신의 매력을 잘 아는 데이킨(김찬호 분)을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해. 그런 고민을 잘 들어주는 스크립스(안재영 분) 같은 따뜻한 친구도 있지. 능청스러운 장난꾸러기 팀스(황호진 분)와 때로 선생님들에게 반항하며 제 주장을 내세우는 락우드(박성훈 분)는 가끔 얄밉기도 했어. 입시에 누구보다 열정적이지만 아무도 합격을 기대하지 않는 운동 보이 럿지(임준식 분), 연극이 최대 관심사라 모의 면접 때도 이걸로 지적받는 크라우더(이형훈 분), 인도 소년인 악타(강기둥 분)는 가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시껄렁한 성적인 농담들에 낄낄대는 그 나이 또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그저 마음이 갔단다.

그러면서 나는 또 문득 내가 만났던 한 아이가 떠올랐어. 학교 선생님이 되기 전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할 때, 키가 작고 눈이 똘망했던 그 여자애는 내게 말했었어. “선생님이 좋아요. 나 같은 애도 좋아해 주잖아요.” 나 같은 애라니. 그 애가 그러더구나. 선생님들은 원래 나같이 공부 못하는 애는 싫어하잖아요. 선생님들은, 원래, 나같이 공부 못하는 애, 싫어하잖아요. 그 애가 선택한 단어가 슬펐어.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선생님들이, 어떤 학교이기에, 어떤 사회이기에 겨우 열네 살이었던 그 애에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지. 지금은 너보다도 나이가 많을 그 애가 만약 이 연극을 같이 봤다면 저 학생들이 부러워요. 저 같은 기타 등등의 삶보다 재밌어 보여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아팠어. 기타 등등이라니, 존재는 그렇게 언어로 생략되고 축소되어서는 안 되는 걸 텐데 말이야. 

내가 헥터와 어윈을 응원할 수 없으면서도 응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연극을 본 영향인지 나도 이런 말장난을 계속 하게 되는구나) , 교사도 그냥 똑같은 사람이구나가 보여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헥터는 퇴근길마다 자신의 오토바이 뒤에 학생을 태우고 그 학생의 성기를 만진단다. 어윈은 학력을 위조했고 동성애자임을 감추는 비밀스러워 보이는 인물이고. 두 사람 모두 불완전한 인간인 거야. 그래, 당연한 얘기야. 학생들은 헥터는 자신들이 깊이 생각(하는 척)하길 원하고, 어윈은 자신들이 똑똑(한 척)하길 원한다고 생각했지. 교사들은 말야, 학생들이 지혜와 지식을 겸비한 완벽한 인간으로서의 교사를 바란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구나. 적어도 나는 그랬어. 그렇게 되고 싶었어.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어. 내가 담임인 우리 반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때도 있었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또래의 죽음을 두고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말고 시험 준비에 열중하라고 다그쳐야 할 때도 있었어.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고. 열네 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미움 받는다고 생각하고 그 현실에 분노하기보다는 자책하던 소녀는 내게서 점점 잊혀져 갔어 

교육청에 고발하겠다는 둥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둥 협박이랍시고 말할 때면, 다른 중요과목 공부해야 하니 자습하게 해달라고 당연하게 말할 때면, 시험 말고 딴 얘기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그 고운 입들로 거친 말을 할 때면, 말하고 싶기도 했어. “얘들아, 선생님도 사람이야. 너네 시험 점수 올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상처받으면 울고 싶어지는 사람이라고. 그러니 사람대접 좀 해줘.” 그러나 그러면 선생님들이 먼저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했잖아요. 공부만 해야 하는 기계 취급하잖아요.” 할까 봐 무서웠어. 난 말이야,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어. 무력감에 점점 짓눌렸던 것 같구나. “네 잘못이 아니야가끔은 그 말을 나에게, 동료 교사에게 해주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단다.

 

 

<히스토리 보이즈>의 유일한 여자 등장인물은 린톳(추정화 분)이라는 역사 교사야. 학생들에게 역사를 암기시키는 그녀는 언뜻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학생들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란다. 나는 그녀처럼 현실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 같아. 그녀처럼 마음의 중심이 딱 잡혀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래, 비겁했어. 견딜 자신이 없었지. 그래서 피한 거야.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는 변명을 갖고 그냥 도망친 거야 

데이킨은 어윈에게 자기가 쓴 에세이를 건네고 일종의 데이트 신청을 해. 어윈도 사실 데이킨에 끌리는 자신을 숨길 수 없었고, 두 사람은 만나기로 약속했어. 두 사람이 데이트를 했을 것 같아? 데이킨이 준 에세이의 제목은 전환점이었어. ‘역사가 여러 가능성들을 두고 덜컹거리는 순간들에 대한 글이지. 전환점. 지금 생각하니 의미심장하네. 어쩌면 그때 이후로 어윈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드러내고 교사로 계속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처음엔 그저 학생들의 입시만을 위해 가르치던 그가 누구보다 멋진 교사로 성장해 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인생의 한 순간은 그에게 다른 길을 건넸고, 그때가 어떤 전환점이 된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학교에서 누군가가 죽는 것은 평생 기억에 남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내게도 어떤 순간들이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구나. 

포스너의 말처럼 고통에도 성적이 주어진다면, 그에게 그렇담 넌 일등급이라고 대꾸해주던 스크립스의 우정에도 성적이 주어진다면, 아니 성적이 주어지는 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지 않게 된다면, 아 그럼 정말 좋을 텐데. 어쩌면 럿지의 말처럼 역사는 정말 좆같은 일 뒤에 좆같은 일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좆같은 일이 정말 좆같은 일만은 아닐지도 몰라. 고통이 곧 지나갈 거라는 스크립스의 위로에 포스너는 그냥 지나가길 바라지 않는다고 대답하지. 어쩌면 포스너는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이 어쩌면 인생의 최고의 순간과 맞닿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야 

<히스토리 보이즈> 속 학생들의 고통스러운 순간마저 내가 만났던 아이들에겐 부러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저 이야기가 바로 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어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어윈 선생님의 말을 곱씹었단다. 무대도 참 예쁘고, 배우들도 그냥 그 인물 자체였어. 지적 즐거움을 맘껏 느끼게 하는 수업 시간, 책상에 웅크려 울던 헥터 선생님, 스크립스의 피아노 연주와 포스너의 청아한 목소리가 빚어낸 우정에 가슴 뭉클해지던 순간…… 3시간이라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단다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학교를 경험한다면, 학교에 대한 이상만을 말하는 사람을 무턱대고 신뢰하지는 않게 되는 법이겠지. 그래서 오히려 안정적인 직업이라서 교사가 되고 싶다는 너의 솔직한 대답이 난 마음에 들어. 그 많은 안정적인 직업 다 놔두고 왜 하필 교사냐고 내가 물으면 넌 뭐라고 대답할까. 존경하는 교사는 하나도 없다면서 왜 교사가 되고 싶다는 건지, 내가 교사를 관둔 이유가 왜 이제 와서 궁금해진 거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할는지. 

뜨겁게 달아오른 건 금방 식는 법이니까, 자극적이지 않지만 따스한 온기가 오래오래 가니까. 네가 교사가 된다면 고민하면서 그 고민 속에서 성장해 가는 좋은 교사가 될 수도 있을 거야.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교사라는 직업을 더 이상 꿈꾸지 않게 될 수도 있고, 막상 해보니 재미없어 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어. 교사를 관두고 살아가는 나는, <히스토리 보이즈> 속 포스너처럼,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지금을 잘 살아가고 있단다.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세상이 말하는 행복에 매달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은 게 진짜 행복일 수도 있는 거라고 네게 말해주고 싶구나 

역사는 성공한 이들의 기록이고, 문학은 실패한 이들의 역사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우리의 삶이 지금도 써나가고 있는 거겠지. 마지막 부분의 넘겨줘라. 때로는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 받아서 느껴보고 넘겨주는 것.”이라던 헥터의 대사가 귓가에 맴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내가 느꼈던 것을 너에게 주절대는 것뿐이구나. 나는 네가 <굿 윌 헌팅>도 보고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도 봤음 좋겠다. (, <히스토리 보이즈>의 공연은 얼마 전 끝났어. 다시 올려지면 소식 전해줄게.) 이 담담해서 단단한, 따뜻하고 균형 잡힌 연극이 너에게 어떤 대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든. 아니다, 대답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던져줄 것도 같구나. 좋은 예술 작품은 정답을 가르쳐 주려는 게 아니라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이잖니. 이런 두서없음과 모순적인 표현들도 연극의 핑계를 대련다. 인생이란 원래 역설이라고 괜한 명언을 덧붙이며 이만 줄일게. 늘 건강하게 지내길.

 

. 봄날의소(bomso@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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