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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에서 퇴출됐대도 <명왕성>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을
입력 2013-07-18 |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어릴 때 외웠던 태양계. 하지만 이제 수금지화목토천해, 까지만 외우면 된다. 2006,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퇴출됐기 때문이다. 태양계에서 가장 멀고 질량과 부피가 작은 데다 충분한 중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등이 퇴출된 이유다. 

영화 <명왕성>태양계가 되고 싶은 작은 별의 항변이라는 카피에서 드러나듯, 명문사립고등학교 상위 그룹이라는 태양계에 속하고 싶었던 작은 별 김준(이다윗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1등을 놓치지 않던 유진 테일러(성준 분)가 학교 뒷산에서 죽은 채 발견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현장에 떨어진 휴대폰의 주인은 준. 준이 유진에게 열등감을 느꼈으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친구들의 증언까지 더해지면서 준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이후 영화는 준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 현재와 유진이 죽기까지의 과거를 오가며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상계동의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준은 전학 온 사립고에서는 몇 문제 틀리지 않았음에도 67등이라는 석차에 머무른다. 당황하고 어이없어하는 준을 향해 유진은 67등이 1등 되는 법은 간단하다고, 앞의 66명을 죽이면 된다고 태연하게 말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짓밟아야 내가 올라설 수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영화를 내내 지배한다. 학교 안에는 전교 10등까지 따로 모아 특별 관리하는 진학재가 있고, 그 안에는 또 자기들끼리 오답노트를 공유하면서 절대 밀려나지 않으려는 토끼사냥이라는 비밀 스터디 그룹이 있다. 그리고 준은 토끼사냥 멤버가 되기 위해 비윤리적인 미션을 수행한다. 그렇게 살면서 가장 똑똑한 시기인 고3을 보내는 준이 마음에 시한폭탄이 자리 잡는다. 

사실 이 같은 정서는 비단 고등학교 3학년만의 이야기도, 영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 같은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상식인 양 용납되고, 오히려 그러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 도덕적인 사람은 바보라 취급받고는 한다. 한데, 정말 그런가.

 

 

전학생인 준의 친구가 되어 준 정수진(김꽃비 분)은 진학재의 컴퓨터를 해킹해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못하는 애들이라며 겁쟁이라 말한다. 범죄에 가까운, 아니 실상 범죄인 행위를 죄의식 없이 저지르는 아이들을 움직이는 힘이 공포심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공포감이지만, 또한 괴물로 만드는 것 역시 공포감이다. 유진은 친구, 그런 건 인간들에게나 있는 거다라며 스스로 인간이길 포기하고, 괴물을 자처한다. 서열을 매기고 정해진 기준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두려워하면서 결국 괴물이 되고 마는 아이들의 모습이 처연하다. 또한 그런 아이들이 그대로 성장해 만들어 갈 사회가 공포스럽다. 

유진은 말했다. 별이 자전할 때 노랫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블랙홀에 빠져야만 들을 수 있다고. 자신만의 노래는 죽기 전에야 들을 수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준은 아무리 달려도 남의 등만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아냐고, 출발점부터 늦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항변한다. 그는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거나 천천히 걸으며 세상을 둘러봐도 된다는 걸, 넘어져도 괜찮고 늦어도 상관없다는 걸 깨닫게 해줄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극중에서 준이 지적했듯, 명왕성의 퇴출은 태양을 중심으로 한 생각이기 때문에 그 생각부터 의심해본다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퇴출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니 퇴출됐대도 명왕성은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명왕성으로 비유된 학생들이 이 영화를 통해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명왕성>은 판타지를 통해 교육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 스릴러 장르의 재미도 만족시킨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 판타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리얼하게 느낀다면, 그것은 실제 교사 출신인 감독의 디테일한 묘사 덕에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우리가 지금의 학교와 이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안타깝게도 어쩌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전형적인 인물들이 쏟아내는 직설적인 대사는 때로 부담스럽고, 맨 앞부분에 등장하는 자살한 초등학생이 쓴 실제 일기는 과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만듦새가 충분히 근사하다. 명왕성에 대한 은유와 젊은 배우들의 연기가 좋고, 음악과 영상도 극을 풍성하게 채운다. 이다윗은 준 캐릭터의 촘촘한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성준 역시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유진을 제법 노련하게 표현해낸다

이다윗, 성준, 김권, 김꽃비, 조성하, 선주아, 남태부, 류경수 등이 출연하며 신수원 감독이 연출했다. 63회 베를린영화제 제너레이션14플러스(14세 이상 관람가) 부문에서 특별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초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재분류(편집 없이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 심사를 통해 15세 이상 관람가로 변경돼 지난11일 개봉했다.

 

. 김가영(kimka02@glebbangzip@glebbangzip.com)

[사진=SH필름, JUNE필름, 싸이더스F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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