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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책, 내게 “감응”을 준 <글쓰기의 최전선>
입력 2016-11-02 |

 

고백하건대, 나는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만난 중3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는 내가 책을 엄청 많이 읽는 것으로 기억했는데 실은 한 권의 소설을 몇 달동안 읽던 것이었다. 읽는 속도도 느리고 다독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왔다. 그러면서 작가가 되겠다니. 속으로는 흥! 많이 읽지 않고도 작가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겠어 혹은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편견만 더 공고하게 될지도 몰라 책 읽으면서 편협해지는 대신 세상과 부딪치면서 인간을 이해하겠어 라며 오만하게 생각했다. 어쨌거나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는 그것에 대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건데, 현실적으로 나는 책 읽는 것보다 자는 것이 더 좋다. 그렇다고 책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서두가 길었다. 암튼 이렇게 일 년에 책 몇 권 읽지 않는 내가 얼마전 온전히 한 권을 다 읽었다. 그것도 제법 빠른 속도로. 그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이다.

 

이 책은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2015년부터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은유 님이 자신의 경험과 가르치면서 겪은 일들을 토대로 글쓰기에 대해 쓴 글이다. 아니 실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자기계발서에 가깝다(자기계발서 류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감응받았다.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 / 감응하는 신체 만들기 / 사유 연마하기 / 추상에서 구체로 / 르포와 인터뷰 기사 쓰기 / 부록 등으로 나눠져 있고 파트마다 소제목을 단 이야기들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맘에 드는 제목부터 골라 읽거나 펼쳐서 나오는 곳부터 읽어도 된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은유 님의 프롤로그를 읽은 다음 군데군데 펼쳐서 읽었는데 읽다보니 남은 단락이 별로 없어서 결국은 다 읽게 됐다. 펼치는 곳마다 옮겨 적어두거나 밑줄을 긋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모든 배움은 인내와의 싸움이다. 마르크스의 말대로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으며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야 한다. 학인들은 글쓰기의 끝이 어디인지 보자고 벼르고 왔다가도 쉬이 일상의 중력에 빠져들었다. 글이 뜻대로 안 써진다며, 나는 안 되는가 보다며 낙담했다. 그것은 나의 모습이기도 했다. 34p 중에서

 

그것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독립을 준비중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살다가 혼자 1년 살면서 열심히 글을 좀 써보고자 했다. 독립 이후엔 매일 글쓰기를 실천해보자 다짐했지만 어느 날은 피곤하고 어느 날은 감기 몸살로 어느 날은 잘 안 써져서 이 핑계 저 핑계로 컴퓨터를 켜지 않는 날도 생겼다. 지름길은 없는데 가파른 오솔길을 뚜벅뚜벅 내 힘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알면서도 일상의 중력은 쓰고자 하는 열정보다 셌다. 아니다. 반대로 얘기하는 게 낫겠다. 쓰고자 하는 열정은 매번 일상의 중력을 이기지 못했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하고 바쁘다며 집필 유예의 근거를 댄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중략)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년간 영화를 한 편도 안 보는 사람은 없다. 글은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56p중에서

 

, 나는 휴대폰을 보다가 계단이 있는 줄 알고 헛딛은 것처럼 덜컹했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을 구분하라. 찌르르 심장이 아렸다. 극작과를 졸업하고 나름대로는 꾸준히 쓴다고 쓰면서 공모전에 내곤 했는데 최근 몇 년간 제대로 쓰질 못했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 쓰겠다, 말만 해왔다. 지은이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침에 30분 일찍 나와 사무실 근처 벤치나 카페에서 잠깐 책을 읽거나 필사를 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책을 들고 나와 카페에서 한 시간씩 책을 읽다 들어갔다고 한다. “쓸쓸한 분투라고 표현했지만 활자와 최소한의 가느다란 끈이라도 쥐고 싶은 안간힘이 내겐 없었다. 그러면서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정말 글을 쓰겠다고 작가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이 맞나.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텔레비전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에서는 이전보다는 조금은 더 쓰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것처럼. 물론 내가 목표했던 것만큼 휘뚜루마뚜루 완결작이 팝콘처럼 퐁퐁 터지진 않고 있지만.

 

좋은 글은 질문한다. 선량한 시민, 좋은 엄마, 착한 학생이 되라고 말하기 전에 그 정의를 묻는다. 좋은 엄마는 누가 결정하는가, 누구의 입장에서 좋음인가, 가족의 화평인가, 한 여성의 행복인가. 때로 도덕은 가족, 학교 등 현실 제도를 보호하는 값싼 장치에 불과하다. (중략)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 개여야 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118p 중에서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결국은 내가 쓴 글이 곧 나이며 다르게 생각하고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자고 말한다.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은 지은이의 말처럼 희망적인 동시에 불안을 준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기분에서 벗어나 정말로 내가 쓴 글로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 나아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확신보다 불안의 순간들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글쓰기에 요행은 없다. 요행처럼 보이는 일이 있을 뿐.”이라는 말에 감응하면서 요행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써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이 책을 읽던 방식대로 펼쳐가면서 와닿은 문장들을 옮겨 적다보니 정말로 좋았던 문장들이 빠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문장들이 감응을 줄 것이다. 그럼 44p의 마지막 문장으로 이 글을 맺어야겠다. 글 쓰는 일이 작가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소수의 권력이 아니라 자기 삶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이 선택하는 최소한의 권리이길 바란다.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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