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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땐 <빨래>를 하는 세상의 모든 나영에게
입력 2012-10-28 |

 

 

나영아, 그냥 이렇게 나영아라고 불러도 되겠지. 스물일곱 살 너보다는 내가 언니이니까 말이야. 무슨 말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너를 보면서 너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져 이렇게 시작했는데, 과연 이 편지를 다 쓸 수 있을지 너에게 부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너와 솔롱고의 이야기에 오래전 내가 끼적댔던 글이 떠올랐단다. 옥탑방에서 빨래를 널다가 눈이 마주쳐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이야기였어. 서로의 손에 각자의 빨래를 들고, 서로의 눈빛을 보고, 서로의 마음을 보고, 서로의 영혼이 얽혀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 탁탁, 빨래 터는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삼키는 또 하나의 음악이 되고, 그들 마음에 묻어 있던 물기가 빨래처럼 마르며, 마침내 바삭하게 구워진 빨래를 개키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되는 뭐 그런 이야기였어. 

이사 오던 날 떨어진 책을 주워주며 마주쳤던 몽골 청년 솔롱고와 네가, 다시 옥상에서 빨래를 널다가 서로를 발견하는 모습은 내가 썼던 이야기 속 남녀를 많이 닮아 있었거든.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솔롱고가 자신을 소개하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짠했을까 

내 이름은 솔롱고스, 무지개라는 뜻이에요.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죠.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나라, 무지개처럼 꿈을 좇아 여기 왔어요. 내 이름은 솔롱고스, 사람들은 나를 솔롱고라 부르죠. 한국 사람들처럼 세 글자로. 내 이름은 솔롱고. 한국 사람 만났어도 젊은 사람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 별로 없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래, 이미 알고 있어서였을 거야. 솔롱고에게 한국이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걸. 솔롱고에게 한국말을 배우는, 아직은 한국말이 서툰 마이클이 나 한국 말 다 알아. 아파요, 돈 줘요, 때리지 마세요. 빨리빨리, 이 자식, 저 자식, 개새끼…….” 할 때는 가슴 아프기도 했지. 마이클에게도 솔롱고에게도 한국은 무지갯빛이 아니었을 거야. 강원도에서 꿈을 안고 찾아온 너에게 서울이 그랬듯이, 나에게 서울이 그렇듯이 말이야.

 

 

 

다른 이웃들은 또 어떻고. “서울살이 십 년, 세 번째 적금통장 해지, 깨진 건 적금통장 그리고 부부 금실이라고 말하는 사람, “서울살이 육 년, 네 번째 직장, 짤리고 짤리다 늘어난 건 술 담배 그리고 변비라고 말하는 사람…… 반토막이라 불리는 지체장애인 딸의 기저귀를 빨면서도 요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잉께 암시랑도 안 허다하는 주인집 할머니는 언제 봐도 애잔하더라. 

암시랑도 안 허다, 라는 말. 너도 자주 그랬잖아. 괜찮다고. 나 언젠가 괜찮다는 말이야말로 안 괜찮을 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 괜찮았으면 싶은 사람들이 안 괜찮은 얼굴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너 괜찮니?’ 누가 물으면 , 나 괜찮아대답하잖아. 그런데 정말 괜찮으면 괜찮냐는 물음도 괜찮다는 대답도 필요 없는 게 아닐까 하고. “지치지 않을 거야!” 외치는 너의 말이야말로 지치게 만드는 지독한 현실이란 걸 보여주는 거니까. 직장 동료의 부당 해고에 반발해서 그동안 근무하던 서점이 아니라 파주 창고로 발령받게 된 너. 자꾸만 너의 의지를 꺾는 가혹한 현실에 결국 무릎을 푹 꺾고 주저앉은 너의 울음. 그 울음을 달래주는 주인집 할머니와 옆집 희정 엄마. 세 여자가 함께 빨래를 하는 모습은 내게도 위로가 되었단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슬플 땐” “사랑이 남아 있는,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스스로를 돌아보며 빨래를 하는 거지.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인생도 바람에 맡기다 보면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슬픈 네 눈물도 마를 테니까. 

고정희를 좋아하지만 원태연을 앞에 진열하는 서점 직원인 너. 네가 좋아하는 시인 고정희가 상한 영혼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더구나.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그래, 그렇게 지친 너에게도 마주 잡을 손 하나가, 너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비가 내리지 않길, 그래서 빨래를 널러 간 옥상에서 다시 너를 마주할 수 있길 기다리는 솔롱고가 있었지. 

참 예뻐요. 내 맘 가져간 사람. 가을 밤 잠 못 드는 사랑 준 사람. 짧게 웃고 길게 우는 사랑 준 사람. 꼭 한 번만 내게 말을 걸어준다면. 꼭 한 번만 웃는 얼굴 보여준다면. 꼭 한 번만 내민 손을 잡아준다면. 밤하늘을 날 수도 있을 텐데. 들리나요, 내 맘 외치는 소리. 보이나요, 내 두 눈에 흐르는 눈물. 느끼나요, 터질 것 같은 내 심장. 밤하늘을 함께 날고 싶은 사람. 참 예뻐요. 나와는 다른 사람…….” 

솔롱고의 진심 어린 마음이 내 눈엔 참 예뻐 보였단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에 염려되는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야. 사랑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는 현실 같아서. 이놈의 고약한 현실 때문에 네가, 그리고 솔롱고가 상처 입게 되는 건 싫으니까. 

외로워도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 때문에 참는다는 솔롱고. 그렇게 참다 보면 가끔 잊는다고 했지. 자신도 사람이란 사실을. 참고 있는 건 너 역시 마찬가지였어. 외로워도 달리 기댈 곳이 없기에 참아내던 너. 그렇게 참다 보면 잊는다고 했지. 너도 꿈을 가진 여자란 걸. 솔롱고는 네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너 역시 솔롱고와 많이 닮아 있었지. 그렇기에 넌 솔롱고를 동정하지 않았을 거야. 동정할 수 없었겠지. 동정이란 건 나와는 다른 상황 속에 놓인 사람을 보며, 그 사람보다 더 나은 상황에 있는 내가, 그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거니까. 그래서 너는 솔롱고를 연민했을 거야. 너와 다르지 않은 사람, 너처럼 서울살이에 상처 입은 가엾은 영혼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은 안쓰러움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어. 상대방의 처진 어깨를 보면서, 상대방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하는 그 마음. 생각하면 아프고 눈물 나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어. 솔롱고를 보면서 너도 그랬겠지. 두 사람은 서로를 연민하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겠지.

 

 

우리도 때리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 나는 사람인데 사람들은 모른 척하죠. 모른 척 눈 감고 살아가죠. 모른 척 눈 감고 귀 막아도 우린 숨 쉬고 살죠. 같은 하늘 아래 아프고 눈물 흘리며 살아가요.” 그렇게 두 사람은 우리가 되었지. 솔직히 나는, 함께 살기로 한 두 사람의 결정에 무턱대고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었어. 너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솔롱고를 보면서 참 예쁘다 생각했지만, 너에게 축의금이라며 봉투를 주는 할머니를 보며 참 마음 따뜻해졌지만……. 

있잖아, 아까 내가 끼적댔다는 그 글 말이야. 그 글 속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서로 한 방에서 살면서 행복하게 살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결말이라는 듯, 헤어졌어. 결국 여자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 얘기하다 보니 너무 절망적이다, 그치? 

나는 어쩌자고, 건강하고 젊은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같이 사는 것에 이다지도 부정적인 미래를 그려보았던 걸까. 괜히 시작하는 너와 솔롱고에게 미안해지는 기분이야. 그러나 누구보다 네가 잘 알잖니. 녹록치 않은 사회 현실, 고달픈 세상살이라는 걸 말이야.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너와 솔롱고가 누구보다 잘 살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어. 너는 솔롱고가 찾은 무지개니까. 단 한 사람이라도 그토록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그 감동적인 눈빛 앞에선, 자신의 삶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이니까. 

앞으로 두 사람의 삶에 지금껏 그래왔듯 시련도 있겠지. 두 사람이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해서, 그 소중한 사랑을 축복한다고, 갑자기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노동자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고 처우가 개선되는 건 아니니까. 삶이라는 건 나와 사회가 무관한 게 아니어서, 행복하고 싶다고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치만 그렇기에 더욱 행복이 가치 있는 거라고도 생각 돼. 현실이 두 사람을 지치게 할 때면 서로에게 기대 때로 맞서 싸우고 때로 훌쩍 뛰어넘으면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어 

어쩌면 두 사람은 지금쯤 아이를 낳은 건 아닐까? 난 사실 내 아이가 태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들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내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야. 고정희의 시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에 이런 구절이 있더라. [여자 남자 함께 가는 이 세상은/누구나 우주의 주인으로/태어난다네/누구나 이 땅의 주인으로/걸어갈 수 있다네]. 나영 솔롱고 함께 가는 이 세상에, 우주의 주인으로 태어난 두 사람의 아이가, 이 땅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기운 나게 해줄 거라 믿어. 그리하여 서울살이 10년째, 20년째, 50년째……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면서 잘 지내길. 너를 위해, 솔롱고를 위해,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에 내 지난 서울살이와 앞으로의 서울살이에 격려와 파이팅을 외치게 된 나를 위해. 

어느새 밤이 깊었다.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못 부칠지도 몰라서 바로 봉투에 넣어 풀로 봉해버려야지. 좋은 꿈 꾸고 있길. 안녕, 나영

 

. 봄날의소(bomso@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사진=명랑씨어터 수박, 빨래 싸이월드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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