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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김일란, “가장 스펙터클한 것은 사람의 표정이 아닐까”①
입력 2013-03-18 |

 

 

S#1. 연분홍치마 & 노라노

‘연분홍치마’는 여성주의 미디어공동체이자 성적 소수 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으로, 지난해 개봉한 <두 개의 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현재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은 패션디자이너 노라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작업 중이다.

“연분홍치마 활동가가 5명이거든요. <두 개의 문> 한참 했었을 때 <노라노> 작품 기획에 들어갔었어요. 지금은 편집 중이에요. ‘노라노’라는 선생님은 성이 노 씨고, 이름이 노라예요. 만으로 85세인데, 열일곱 살에 결혼하셨다가 열아홉 살에 이혼을 하셨대요. 이혼하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노라라고 지으신 거예요. 입센의 <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처럼 살고자 지으신 거죠.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셨고, 한국에 와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셨고. 대표적인 건 가수 윤복희 씨의 미니스커트, 펄시스터즈의 판타롱(나팔바지) 등을 스타일링하셨어요.”

다섯 명이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하지만 또한 함께 공감하고 격려하면서 같이 나아가는 친구들이 넷이나 있다는 것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같이 하는 게 만만치 않죠. 다섯 명 역사가 다 같진 않아요. 동시에 다섯 명 다 모인 건 2002년, 단체를 발족한 건 2004년. 제작 PD가 있고 감독이 있고, 기본적으로는 다섯 명이 같이 해요, 역할 분담을 해서.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을 나누는 상대기도 하고, 편집할 때 도와주는 동료기도 하고. 일종의 자기 프로젝트가 있는 거죠. 연분홍프로젝트이기도 하면서 자기 프로젝트이기도 한. 그렇게 같이 고민도 하고, 혼자 고민해야 할 땐 혼자해요. 고민을 함께 나누는 공동 작업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되게 일상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큰 힘이죠.”

PD와 감독의 역할은 어떻게 얼마나 다를까. 통상적으로 제작 PD란 “제일 중요한 건 제작비 마련하는 것”이지만 “독립 다큐에서 PD 역할을 딱히 뭐라고 정의해야 될 진 모르겠다”고 김일란 감독은 말한다. 연분홍치마 안에서 PD란 “딱히 돈을 끌어오고 이런 역할이 아니라 감독이 그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얘기도 하고 고민도 같이 나누고 촬영에 같이 나가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역할”이라고.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려면 어쩐지 촬영부터 편집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보통 얼마나 걸릴까. 김일란 감독은 촬영 종료 기간을 안 정하고 시작하지만, 제작 지원을 받으면 기한이 생긴다며 웃었다.

“오래 걸린다고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다큐 작업이란 게 어느 정도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같기는 해요. 작업마다 다른데 언제 종료해야 되는지, 종료 시점을 감독 스스로가 정해야 하는 게 애매한 부분이기도 하고. <노라노>는 한 3년 쯤 됐어요. 작년에 촬영을 종료 하고 지금 편집 막바지에 있어요.”

현재 연분홍치마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에 대한 다큐도 작업 중이다. 김 감독은 “다른 감독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기약은 없지만 기약을 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쌍차의 노동자들이 공장에 복귀해야 촬영이 종료되는 것은 아닐 거다”면서 “어느 시점에서 왜 종료해야 하는지 감독이 고민하고 판단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S#3. 두 개의 문

<두 개의 문>은 연분홍치마 작업이 어느 때부턴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10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김일란 감독이 지난해 홍지유 감독과 함께 선보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올해 1월 제4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올해의 독립영화상, 2월 제11회 언론인권상 본상 등을 수상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가장 좋았던 점은 눈물이 펑펑 안 났던 것. 펑펑 울게 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영화는 나를 찔끔 울릴 뿐, 통곡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연분홍치마에서 매년 한 편씩 작품을 했어요. <3XFTM>(2008년),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2009년), <종로의 기적>(2010년), 그리고 2011년도에 <두 개의 문>. 2005년 처음 다큐멘터리를 하고 난 다음에 약간의 텀이 있었던 거 말고는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렸죠. <두 개의 문>을 왜 하게 됐냐고 한다면, 연분홍치마의 어떤 작업의 흐름상 보자면 약간 예외적인 활동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일상적으로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하거든요. 기본적으로 저희 스스로 인권단체라고 시작을 했고, 지금은 그게 약간 다큐 중심으로 재편되다시피 한 상황이긴 하지만. 당연히 가야하는 현장이었죠. 먼저 활동을 시작한 후배가 미디어 활동가들이 결합해서 같이 알렸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해서 하게 됐어요.”

<두 개의 문>은 철거민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철거민의 입장에서만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경찰 특공대의 진술, 증거 동영상 등을 보여주며 그날의 진실을 공정한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담담하고 단호한 편집은 눈물을 쏟기보다 사건을 제대로 보고 국가란 어떤 존재인지, 공권력이라고 하는 그 힘은 어떻게 남용되고 있는지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되도록이면 선정적인 장면을 안 쓰려고 해요. 선정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스펙터클한 것 중의 하나가 사람의 표정인 것 같아요. 굉장히 잘 찍힌 어떤 비통한 표정만 봐도 뭔가. 특히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야말로 굉장히 선정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죠. 인물에 관한 다큐멘터리일 경우,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알지 못하는 사람의 삶을 느끼고 고민하고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하고 품격을 유추하고 그런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되게 관객으로서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하는 게 오만하다 해야 할까요. 실제 그 사람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이 아니기도 하잖아요. 감독에 의해 가공된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 경계에서 생각해보면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로 사실은 되게 일탈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일 텐데, 아주아주 다른 어떤 이야기가 나올 게 없다면 굳이 그 사람이 나올 이유도 없고, 뭔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맞는 삶을 살고 있기에 다큐가 되는 걸 텐데. 그래서 생각을 해보면 다큐멘터리는 장르 자체가 선정적이랄까 외설적이랄까 이미 그러한 것을 전제한 장르인 거죠. 다른 사람의 삶을 왈가왈부하면서 옳으네 그르네 여러 판단을 하면서 때로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그게 극영화랑 다르게 실제 그 사람이 있으니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그 사람의 삶이 있기 때문에 오는 무게가 있어요. 그게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장르의 본질에 가까운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울고 있는 장면이 가장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 같아요. 누군가 울고 있는 장면, 사실 가까운 사람 아니면 잘 안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우는 모습이잖아요. 약해져 있는 모습이랄까 감추고 싶은 모습이랄까 친한 사람 아니면 잘 보여주고 싶지 않는 건데. 고백하듯이 우는 얼굴 그런 비통함에 가까운 얼굴, 그 얼굴이 가장 스펙터클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일 피한 것이기도 하구요.

사람들이 끌려가고 경찰과 대치하고, 이런 장면을 편집할 때 비통한 얼굴을 집어넣는 것. 이야기에 따라 넣을 수도 있고, 그 상황을 더 비통하게 만드는 힘도 있지만… 안 한다는 게 아니라, 집단 대 집단, 그런 부조리한 구조 이런 걸 많이 보여주려고 했었어요.”

 

 

김일란 감독은 “삶의 이해도를 높이고 공감하게 되고 이런 것들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해 이 사람의 비통한 감정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구조를 봐야하거나 논리를 봐야하거나 할 때는 경유하지 않고 그 자체를 봤으면 해서” 편집도 그렇게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법 자체의 논리와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법 감정의 논리에는 굉장한 괴리가 있고 그런 것들을 설명하기가 굉장히 복잡했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시 철거민 측 변호사들의 주장은 정치적인 게 아니라 단지 법의 논리만 보더라도 문제라는 것이었다.

“거기 핵심이 뭐냐면 증거 없음, 이었어요. 누가 옳았건 상관없이 증거 없음. 증거주의에 입각해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추정만 가지고 유죄를 낼 수 있냐는 거죠. 형사법 같은 경우 벌금이 아니라 형을 사는 건데, 감옥에서 형을 산다는 의미는 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갈 때 엄청난 페널티가 주어지는 거잖아요. 사회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합의한 법인데, MB정권에서는 무죄라고 주장하는 자체가, 법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입장이 된 거죠.

그래서 <두 개의 문>이라는 작품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판결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두 번째 문제라는 거였어요. 일단 철거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단지 철거민이 소수니까 지지해야 한다 이런 거 전에,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보느냐 하는 것을 같이 들어가 본다면, 맨 뒤에 박진 씨가 얘기했던 것처럼 철거민이 어떤 주장을 하든 간에 그걸 들었어야 한다는 거예요. 국가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이게 하고 싶었던 건데. 너무 어려웠던 거죠. 더 쉽게 이야기 하라고 해도 더 못했을 것 같아요.”

재판 과정에서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염병에 대한 진술은 없었다. 또한 국과수에서도 화염병이 발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했다. 그런데도 철거민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4년 5년 형을 다 살거나 가석방으로 나왔다.

김일란 감독은 “재판 논리도 되게 어렵고, 근거가 없으면 무죄라고 하는 게 그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것도 맞지만, 그걸로 인해서 억울한 사람을 방지하기도 하는 건데, 법이 참 그렇다”며 씁쓸해 했다.

해직언론인들이 만든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 시즌2에서 앵커를 보기도 했던 김 감독은 “그 당시에 해직언론인들이 세상을 바꿔보겠다 하는, 최소한이기도 한 최선의 어떤 방송 같은 거였다. <두 개의 문>을 만들었을 때 용산참사와 관련한 어떤 진상규명이 됐으면 좋겠다 그랬던 마음이나 이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는, 세상에 감춰진 진실들이 잘 밝혀졌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며 “약간 연대의 마음도 있었는데 하다보니까 어렵더라. 내가 방송에 적합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글.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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