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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김태형, 1장 모범생 삶에서 가장 재미있던 일
입력 2012-09-19 |

 

 

1장 모범생 삶에서 가장 재미있던 일

 

남자, 등장해 안쪽의 주방으로 간다. 남자, 커피를 내리는 동안 여자 둘, 책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잡담을 나눈다. 잠시 사이. 남자, 커피를 가져오고 여자2, 봉지 안의 롤케이크를 꺼내 잘라 남자가 가져온 접시에 담는다. 그리고 그들의 두서없는 잡담이 시작된다.

여자1 : 연극 <모범생들>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반성문 장면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완전한 암전 없이 그대로 현재로 전환되는 게 좋았다. 배우들이 교복에서 수트로 바꾸며, 뭔가 관객도 고조된 감정을 함께 추스르게 되는 것 같았다. (<모범생들>은 옷깃, 넥타이, 명찰, 행커치프 등 약간의 변화만으로 고3이었던 과거와 30대가 된 현재를 오간다.)

남자 : 만들어진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는데, 그 다음 장면이 바로 결혼식으로 이어져야 돼서 어떻게든 어른으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구조 상 첫 장면에서 어른에서 한 번 아이로 바뀌니 처음 희곡을 읽고 얘기를 할 때부터 무대 위에서 갈아입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의상 팀이 애를 많이 써서 방법을 찾았었다. 교복에서 수트로 갈아입는 게 크게 다를 바 없고, 그대로 이어져가는 느낌을 주고 싶어서 무대 위에서 하고자 했다. 근데 처음엔 좀 다른 방식으로 했던 것 같다. 민영이가 등장해 옷을 갈아입고 다른 애들이 같이 따라서 갈아입는 것으로 만들어보기도 했었고. 어느 날 그냥 천천히 갈아입어라, 그 모습 그대로 노출해서 갈아입고 관객들에게 보여주자, 그 전에 반성문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고조되고 쌓아온 게 있으면 그걸 그대로 그 시간동안 털고 억지로 웃으며 다음 장면으로 가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런 면이 한 가지가 있었고. 또 한 가지는 그런 거친 감정의 동요를 겪고 옷을 갈아입는 습관적인 행동을 통해서 그대로 그렇게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 그런 생각도 있었다.

여자1 : 원래 희곡상에는 그런 게 안 나올 텐데.

남자 : 그런 걸 하는 게 연출의 일이겠지.

여자2 :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

남자 : 말이 많았었다, 사실은. 음악이 없으니까 이상하다, 음악을 틀어놔야 하는 거 아니냐. 뭐 여러 말이 많았지만, 결국 그렇게 완성된 장면이다.

여자2, 틈틈이 카메라 셔터로 남자를 찍는다.

여자1 : 본인이 모범생이었는데, 과학고에 카이스트 출신이란 게 연출가로서 어떤 장점 혹은 단점이 있을까.

남자 : 사실 단점이 되는 건 전혀 없다. 손해 보는 게 없거든. 아무래도 학력 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어디 가서 직접 전 과학고에 카이스트 나왔어요, 그러지는 정말 않는다. 근데 뭐 조금씩 알게 되시는 분들이 많지.

여자1 : <모범생들> 프로그램북만 봐도 예를 들어 전문대 의상학과 중퇴라면 그런 걸 쓰지는 않잖나.

남자 : 그치. 저도 그런 자리에 이용해 먹는 게 있죠, 프로필에. 아닌 척.

여자2 : 영리하게.

남자 : 영악하게. 사실 다른 공연은 쓰지 않지만 <모범생들> 같은 경우에는 도움이 되고, 제작사에서 필요로 하기도 하기에, 그럴 땐 쓰는 거다.

여자1 : 카이스트 중퇴하고 한예종을 가게 된 게 고등학교 때부터 해온 연극반 경험 때문이라고 들었다. 연극의 어떤 점이 끌렸던 걸까.

남자 : 하도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는데.

여자2 : 10년쯤 됐나.

남자 : 10년이 뭐야,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고등학교 갔는데 사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근데 아무래도 남들과 다르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했던 건 수학경시대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그거였고, 몇 명 뽑아 나가고 상 타고 그런 게 재밌었다. 우쭐한 기분도 들고.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우쭐한 마음에 시작했다가 그 일이 정말 재미있어져서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교에 갔는데, 중학교 때만 해도 시를 읽고 시를 쓰고 교양 혹은 인문학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던 시기였기에.

여자2 : 남중이었나?

남자 : 남녀공학이었는데 합반은 아니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인터넷이나 PC통신 이런 게 발달 전이라 정보의 한계도 있었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사춘기적인 교양을 쌓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그러려고 애썼던 것 같다. 사실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책도 많이 보고(웃음). 그러다가 과학고도 남들이 잘 안 가니까 가고, 2학년 때 카이스트에 가게 되고. 고등학교가 서클활동이 활발한 학교였는데, 입학 하고 바로 연극반에 들어갔다.

여자1 : 왜, 연극반이었을까. 튀고 싶어서?

여자2 : 남들 앞에 서는 게 좋았던 건가.

남자 : 그땐 연출이 뭐하는 건지도 정확히 몰랐었고, 남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이런 걸 잘하지도 않았지만, 연기를 한다는 건 좀 다른 느낌이어서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다 2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데 다른 애들은 고3 준비하느라 바쁘고, 사실 고등학교 3기라 연극반 시스템 체계가 잡혀 있는 게 아니어서, 내가 연출을 하겠다고 하면서 책을 보고 주도권을 가지고 연습을 진행하게 됐다. 그 전에는 선배가 이렇게 저렇게 많이 했지만 주도적으로 공연을 만들어가는 게 너무 좋았다. 연습할 때 재밌었고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게 재밌었고 우리가 연습한 걸 무대에 올렸을 때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그런 게 재밌었다. 그 순간이 평생 했던 일 중에 가장 재밌었던 일 중에 하나인 거 같다. 남들 앞에서 내가 뭔가를 만들어서 보여줬을 때 내가 모르는 타인들이 감동을 받거나 뭔가를 느끼는 그 과정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자1 : 그래도 집에서는 많은 반대가 있었을 텐데. 카이스트를 그만둘 때는 어땠나.

남자 : 처음 시작할 때는 심하셨는데 지금은 뭐, 오래됐으니까. 그때는 부모님도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기도 했고. 대학교 때는 공부하는 게 재미가 없었고, 사실 어렸던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해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결국에는 삼성전자 취직해서 연구하거나 그런 걸 텐데 그런 삶은 싫었다. 한 번 산업디자인과로 전과를 하기도 했었다, 좀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근데 그림에 전혀 소질이 없던 거지. 여긴 삼성전자에서 만든 제품 포장지를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 그때 한창 피 끓는 젊은 나이어서 그냥 이렇게 “자본주의의 개”가 되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웃음) 사실은 공부하기가 싫어서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쨌든 연극반 동아리방에서 선배들과 거의 살았고, 그 와중에 연극영화의 이해 이런 교양 수업을 들은 것도 선택에 영향을 준 것 같다. 독일의 브레히트를 전공하고 오신 선생님이셨는데, 연극의 사회적 기능, 권력의 규제, 기술적인 것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 뭐 이런 것에 열변을 토하셨다. 거기에 반해서 아 그 길을 걸어봐야겠다, 하게 된 거다.

여자1 : 얼마 전 공연한 ‘BBK라는 이름의 떡밥’도 그런 의미를 가질 텐데,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계속 하게 되는 건가. (‘BBK라는 이름의 떡밥’은 2012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참가작으로, 10/24~10/29 홍대 가톨릭 청년회관 CY시어터에서 재공연될 예정이다.)

남자 : 모르겠다, 어떻게 될지. 모인 건 작년 11월쯤인데, (양)동탁이 형과 얘기를 하다가, 그 형이 2007년 <모범생들> 할 때 서민영 역할이었다. 서울대 영문과로 모범생 출신인데 번역해서 돈 벌고 그런다. 아무튼 맨날 어디 시위현장 가면 그 형을 만나게 되는 거다. 촛불집회 가면 만나고 희망버스 가면 만나고. 어느 날부터 이런 거 해보고 싶다 장난삼아 진담 삼아 하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시작하게 됐다.

여자2 : 공연을 본 사람으로서, 배우가 물론 연기를 하는 거긴 하지만 그 배우와 대사가 싱크로율이 맞는 것 같았다. 자기 말을 하는 느낌이랄까.

남자 : 정말 처음엔 자기 말로 자기 생각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다보니까 의외로 비슷한 거다. 이런 프로젝트로 뭔가 얘길 해보자 모인 사람들이 디테일한 결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거지. 그렇다보니 너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상반된 의견을 가진 캐릭터 하나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를 불러 같이 얘기를 해보고 대한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 굉장히 합리적이지만 굉장히 생각이 다르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서로 건드려서도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 가치관 안에서는 합리적이구나 그런 걸 느꼈다.

여자2 : 지금의 삶을 만든 어떤 순간이나 어느 사람이 있을까.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아, 그 일이 이렇게 연결된 것 같다, 하는 거 말이다.

남자 : 고등학교 때 공연 했던 그 순간이 지금까지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다. 그게 연극 연출이란 것에 재미를 느끼고 살아갈 수 있게 된 큰 힘이었다. 브레히트 수업도 인상적이었고. 또, <모범생들>도 그런 계기 중에 하난데, 2009년에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모범생들> 한 마지막 날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다. 이 얘기 맨날 하는데. 슬기란 애가 있는데…

여자2 : 아, 왜 그 분은 맨날 개새끼라고 부를까...

남자 : 욕을 많이 먹는 캐릭터다. 귀엽고 착한데, 자기 곤조(?)가 있고. 그때 (홍)우진이 (이)호영이 (김)대종이 다 동갑이고, 걔가 막내인데 싹싹하기는 하지만 할 말은 다 하고 사랑받을 듯하면서도 미움 받는, 하지만 굉장히 진정성은 있으면서, 나도 좋아하는 친군데, 걔도 열심히 하고 잘하기 때문에. 아무튼 맨날 구박하고 개새끼야 이러다가, 딱 끝나고, 공연 자체가 좋아서 눈물 닦으며 분장실로 가는데… 저 무대 뒤쪽에 하얀 조명을 받으면서 우진이가 슬기를 이렇게 포~옥 끌어안고 서로 눈물 닦으면서 토닥토닥 해주고 있는 거다. 이 친구가 얘를 아껴주고 공연을 잘 해서 토닥토닥 하는 것도 있지만, 공연에서 받은 어떤 에너지와 관객들에게 받은 사랑과 이 팀을 만든 그 기운 여러 복합적인 게 고스란히 그 장면으로 딱 넘어간 것 같더라. 그 전에 했던 공연들도 굉장히 물론 감동적이고 좋았고 이런 순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때가 또, 앞으로 연극을 오래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순간을 또 느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 같다. 그 기운으로 오고 있는 거고.

열린 문으로 밖의 소음이 들려온다. 여자2, 문을 잠시 닫는다.

 

(*2장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김화룡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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