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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김태형, 2장 능력에 비해 운이 좋아야 계속 할 수 있는 일
입력 2012-09-19 |

 

 

2장 능력에 비해 운이 좋아야 계속 할 수 있는 일

 

여자1 : 희곡을 볼 때는 어떤 부분에 유의해서 보나.

남자 : 난 구식이라서 이야기가 재밌는지 없는지 본다. 나한테 울림이 있는지, 감동이 있는지, 혹은 어떤 재미가 있는지. 그렇게 재밌다 생각이 들면 그러고 나서 장면들을 더 재밌게 보여주기 위해 구성해 나가는 거고, 장면 전환이나 전체적인 흐름 움직임 무대를 상상하면서 읽게 되지. 여기서는 이런 호흡 대사 톤을 통해서 관객을 울게 해야 되는 장면이야, 그런 생각이 들면 그 장면은 지저분한 거 빼고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런 걸 계산하면서 공연 전체의 음악성 그러니까 강약과 리듬감에 대한 고려를 많이 하며 보는 것 같다.

여자1 : 그렇게 연출하다 막히는 부분이랄까, 생각했던 대로 장면이 안 나온다거나 그럴 땐 어떻게 하나.

남자 : 엄청 괴로워하는 거지. 될 때까지 괴로워하는 거다.

여자2 : 그럼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

여자1 : 술?

남자 : 술 잘 안 먹는다. 술은 즐거울 때 마시지, 괴로울 때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럴 땐 사실 정면 돌파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슬럼프란 게 결국 해결이 안 돼서 생기는 건데, 어릴 땐 도망 많이 다녔는데, 그럴 땐 해결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그게 어려워서 잘 안 하게 되는 거거든. 이거 뭔가 잘 안 돼,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돼, 근데 내가 못한 걸 사람들한테 티내긴 싫고, 걸릴 것 같아, 무시할 것 같고.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근데 나 못하겠어, 잘 몰라, 그런데 어떻게 해 보겠어, 차라리 그렇게 얘기하고 가면 오히려 편해지고 좋아질 수도 있고. 그래야 풀리는 것 같다. 아직도 물론 힘든 일이 생기면 힘들긴 하지만, 결국은 문제 자체를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는 거다.

여자1 : 연극이란 게 보는 관객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연출의도를 심하게 오독하는 관객도 있지 않나.

남자 : 그런 경우라도 오독하게 만든 문제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때로는 관객분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 기억을 해두지, 아 이건 이런 식의 의미가 있구나.

여자2 : 인터뷰 때 써먹으면 되겠다.

남자 : 어떤 관객분이 이렇게 말했다 하면서 말하는 경우도 있고. 사실 현장에서 하다보면 이런 의미가 될 것 같애 어렴풋이 상상은 되지만 말로 정리가 안 되거나 깔끔하게 정리가 안 될 때도 분명히 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 이건 이런 식으로 하면 될 것 같애, 하는 생각이 드는. 예를 들면 <모범생들> 마지막 옷장에 옷이 나오는 것도. 이거 하면 될 것 같은데 무슨 의미를 가질지는 잘 모르겠어 근데 될 것 같애 그러니까 이렇게 만들어 봐 한번 해보자 하고 디자이너 분한테 부탁을 하고 주문을 하고 생각을 하는 거다. 아 그렇다면 씬 안에서 이것과 연관시켜서 이 장면을 조금 더 강조를 해야겠다, 하면서 보완해 가는 거고.

여자1 : 같이 본 동생은 그 장면을 결혼식장에 온 하객들로 받아들이더라.

남자 : 내 논리로 뭔가 해석이 되는 이미지를 상징으로 쓰지, 그렇지 않으면 못 쓴다. 그렇게 하는 사람 보면 부럽기도 하고. 김기덕 감독 같은 사람은 일반적인 상징과 비유 체계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어떤 순간 어떤 이미지가 강렬하게 표현될 때가 있더라. 난 그런 거 잘 못한다.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아 이 옷장의 옷들은 어? 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논리적 비약은 아닌 그런 걸 찾아 하려고 되게 애쓰는 편이다. 성공하는 것도 있고.

여자1 : 그 장면도 연출가가 연출한 거구나. 몰랐다. 그럼 연출가는 조명, 음악 이런 것에 어디까지 관여하고 결정하는지 궁금하다. 조명감독, 음악감독 등 포지션들이 있고 함께하는 작업이니까.

남자 : 이걸 어떻게 얘기하지. 음, 아주 디테일하고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각 파트 분들이 책임지고 만들어주고, 그게 당연한 거고. 진행하는 기본적인 컨셉이나 디자인에 관해서는 끊임없이 연출과 협의해서, 사실 마지막의 결정은 연출이 컨펌하긴 한다. 프로덕션이나 제작사가 붙어 있으니까, 주어진 예산 안에서 함께 협의하고 관여하면서 결정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무대나 의상도 그런 식이다. 조명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많이 이뤄진다. 일단 무대가 나와 있어야 해서, 현장에서 얘기를 많이 하면서 결정한다.

 

 

여자1 : 연출가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여자2 : 트위터에서 누가 질문한 것에 “하지마세요” 라고 답했던데.

남자 : 크게 두 가지 얘기를 하자면,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지만 힘든 일인 것 같다. (잠시 생각하다가)능력에 비해서 운이 좋아야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다, 솔직히.

여자1 : 이 쪽 계열이 다 그런 거 아닌가.

남자 : 그렇다. 이 쪽이 다 그렇지만. 누군가 알아주고 봐주고 그래야 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 정말 노력해서 뭔가 만들어내는 걸 해야 한다. 난 운이 좋았다, 사실. 내가 한 작품을 영향력 있는 사람이 봐줬고 나쁘지 않은데? 해서 연결 연결돼서 2007년에 시작했으니까 햇수로 5년, 6년차 되는데 쉬지 않고 매년 연출을 해왔다. 적어도 하나씩. 아니 일 년에 두 번씩은 꼬박꼬박 했으니까. 정말 운이 좋은 거다. 내 나이 때 나 같은 사람이 없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닌 거다.

여자1 : 운을 못 잡으면 연결이 안 되는 건가.

남자 : 사실 어떤 타협의 순간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것도 있다. 상업적인 것 뭐 어때 이렇게 좀 쌓아가고 하지, 눈 딱 감고 열심히 해보자 뭐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막상 그렇게 시작하긴 쉽지 않거든. 아주 실력 있는 후배를 적어도 나만큼의 길로 끌어줄 수 있는 방법을 모르겠다. 난 우연히 간 거기 때문에.

여자2 : 정말 실력이 있으면 결국 누군가의 눈에는 띄게 되지 않을까.

남자 : 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미국의 어느 평론가가 “예술은 1%가 독식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기껏해야 한 달에 한 번 연극을 본다 치면, 검색해서 잘 나가는 제일 좋다고 하는 하나를 보지 않겠나. 어떤 분야든 1, 2%가 독식하고 나머지를 끌고 가는 거다. 비용이 허락하는 한에서 가장 잘 나가는 것을 선택하는 거지. 배우나 연출도 똑같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고, 아는 사람 통해서 어떻게 될 것 같고.

여자1 : 언젠가 될 것 같고.

남자 : 그런 게 재생산 되고 그러니까 의외로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곳 같다. 원활하게 순환되는 구조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제 밑에 연출을 만나본 적이 없다. 연출한다는 후배 기껏해야 두세 명? 네 명? 몇 명 없다. 어렵다. 연출을 하는 게 어렵다기보다 연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까 외국에서 실력 있는 연출가들이 만들어지는 게, 해봐야 느는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성공도 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하는 건데, 우린 기회 자체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기회 한 번 생기면 어떻게든 해봐야지 덜덜덜덜 하다보면 제대로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여자2 : 연출가 수명이 어떻게 되나? 몇 명 오래하는 사람이 있고, 막상 1, 2년 하고 못하거나 제대로 작품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인 건가.

여자1 : 뭔가 정말 연출만 하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자기가 쓰거나 연출하고, 배우하면서 연출하기도 하고.

남자 : 없진 않지. 꽤 있다. 나야 이 쪽 있으니까. 잘 하는 분들 많이 계신다. 선생님들도 계시고.

여자2 : 남녀 비율은 어떻게 되나.

남자 : 남자가 훨씬 많다. 여자는, (몇 명 꼽아본다)어, 그래도 꽤 있긴 있네. 학교 다닐 때 비율은 비슷한데 사회 나오면 남자 비율이 많다. 아, 근데 저 담배 피워도 돼요?

남자, 담배를 찾는다. 커피 잔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주방에 들어가 빈 잔에 홍차를 채우는 남자.

남자 : (방백)아, 오늘 말 조금 하려고 했는데 너무 많이 했네.

남자, 담배를 입에 물고 잠시 나간다. 암전.

 

(*3장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김화룡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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