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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김태형, 3장 연출의 가장 큰 무기는 설득력
입력 2012-09-19 |

 

 

3장 연출의 가장 큰 무기는 설득력

 

남자, 담배를 피우며 대화는 계속된다.

여자1 : 본인이 어떤 연출가라고 생각하는가. 배우들의 평가는 어떤지 궁금하다.

남자 : 사실은 굉장히 공통된 의견이 있다. 지각을 한다, 동정심을 유발한다. 뭔가 굉장히 힘들어 보이고 불쌍하고 지쳐보여서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이 들게끔 만든다는 의견이. 배우들하고 즐겁게 일하고 싶다. 싸우고 싶진 않다. 이상적이긴 한데 즐겁게 일하면서 잘하고 싶다. 당연히 충돌할 때도 있지만.

여자1 : 그럴 땐 어떻게 하나. 캐릭터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에 부딪치게 되면.

남자 : 어르고 달래고 뺨치고 재롱부리고 해서 어떻게든 해보는 거다. 얘기를 많이 한다. 연출의 가장 큰 무기는 “설득력”이라고 선생님이 그런 얘길 해주셨는데. 결국은 배우를 설득하는 거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으로 관객을 설득하는 거고. 설득에 대한 근거는 텍스트를 연출이 이해하는 데 있는 거다. 그걸 가장 매력적이고 누구나 설득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힘이겠지. 설득력의 힘은 주관적인데, 카리스마 있게 욕하고 정신없게 밀어붙이는 스타일도 있고, 천천히 얘길 잘 들어주는 방법도 있다. 엊그저께 같이 공연했던 친구 (박)시현이가 <모범생들> 같이 하고 이번에 <비스티보이즈> 같이 했는데, 형의 좋은 점이라고 말해준 게 있다. 연습하거나 극장에서 뭐 맞추거나 시간이 모자라고 급할 때는 내가 엄청 말을 따따따 하고 하이톤으로 얘기하고 욕도 하고 정신없거든, 정말 애들이 다 시정잡배라고 할 정도로 (하이톤으로 흉내내는)야 이 새끼야 야 뭐라고 똑바로 하라고! 계속 그런다. 흥분하니까. 몸을 움직여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막 밀어붙이는 것 같다. 거의 후반부나 타이트하게 가야할 때 그런 거고. 그렇게 해도 애들이 화를 내거나 기분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신뢰를 쌓아두고 같이 놀고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자잘한 거는 아무렇지 않게 던져서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배우가 자존심 상하거나 기분 나쁘거나 이렇게 할 만한 얘기도 분명히 있다. 연출이 배우에게 해야 될 얘기 중에는 그런 것들이 상당히 많다. 어쨌든 둘 다 주종관계가 아닌 동등한 두 예술가가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들이 있고 어떤 책임이나 다양한 포지션이 있는 거니까, 조금 더 책임감이 주어지기 때문에 요구하고 요청할 수 있는 것뿐이다. 자존심 상하게 되는 얘기도 분명히 있는데, 시현이 그런 얘기를 조용히 불러서 따로 얘길 한다고 하더라. 상처받지 않을 얘기는 그냥 툭툭 하고 상처받을 얘기는 불러서 따로 한다고. 생각해 보니 이 얘길 하면 좀 다른 배우들 눈치나 뭐 그런 생각이 들면 접어두고 잠깐 쉬었다가 나중에 얘기한다. 그게 사실 더 효과적인 거다. 다 있는데 괜히 창피 줘서 끌어올려서 더 하려고 그런 의도를 가지고 밀어붙이는 분들도 있거든, 사실. 근데 사람 건드려서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가지고.

여자1 : 그럼 좋은 연출가란 배우와 함께 서로 잘 만들어가는 사람일까?

남자 : 좋은 연출가란 사실 관객을 만났을 때 평가되는 것 같다. 좋은 동료 연출가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계산이 빠르고 임기응변에 능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빠른 선택을 해주는 편이다. 일이 너저분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걸 너무 싫어해서, 내가 게으르니까, 길게 늘어지는 걸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빨리 처리하려고 한다. 이 장면은 이틀 삼일이 걸려도 이렇게 만들어놓고 완성하고 가야한다 그런 생각이 들면 애들이 힘들어하고 지쳐도 해결할 때까지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일정은 빠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빨리 해놓고 놀고, 즐거워하는 게 좋다. 동료 연출가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창피하지만. 관객과 만났을 때를 보자면, 그 작품이 빛나게 만들어주는 게 좋은 연출가일 텐데, 아직 잘 모르겠다.

여자1 : 관객과 소통을 잘하고 계신 것 같은데.

남자 : 일단 어쨌든 나는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은 세대다. 고등학교 때부터 PC통신 인터넷 커뮤니티 이런 발전 과정을 다 거쳐 오고 참여해오면서 그 정서를 재밌어 하고 좋아한다. SNS를 통해 만나는 것도 즐거워하고. 2009년 <모범생들> 하면서 그 때 처음으로 내가 한 작품을 진지하게 이야기해주고 리뷰해주고 애정을 보여주는 관객 분들이 생겼고, 그래서 배우들도 신났다. 그때 같이 했던 (이)호영이, (홍)우진이, (김)대종이, (김)슬기. 사실 관객들에게 알려진 배우는 아니었거든. 근데 이런 배우도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아주고 응원해주고 싸인도 해달라고 하고. 이 열기가 젊은 우리들에게 고마웠고 신선했고 더 열심히 해보자 에너지로 가득하게 해준 것 같다. 그래서 고마운 사랑에 어떻게든 이 분들에게 뭔가 보답을 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에 이것저것 많이 했다. 싸이월드 클럽 만들면서 채팅도 하고 게시판에 글 올리고 술자리도 갖고 이벤트도 하고 관객과의 대화 한다고 술집에서 술도 마시고 OX퀴즈도 하고. 배우들도 기본적으로 같이 하는 걸 즐거워하던 친구들이어서.

실내가 좀 덥다. 겉옷을 벗는 남자.

여자1 : 작가와의 관계는 어떤 편인가. 수정이 계속 되잖나.

남자 : 그럼. 수정도 많이 시키는 편이고 그 점에 있어서 다행히 작가와의 관계가 틀어지진 않는다. 그 드라마의 큰 구조를 봤을 때 이 장면이 이런 식으로 가는 게 낫겠다, 그럴 때 수정을 요구하는 거지.

여자2 : 작가도 설득해야 하는 거겠다.

남자 : 그렇다. 작가의 대본을 통해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작가를 충분히 존중해줘야 되고 그게 맞는 거다. 하지만 작가들도 써왔는데 정확하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주제가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거든. 작가 만나서 처음 하는 얘기가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주제가 뭐냐, 묻는다. 학문적이고 아카데믹하고 어떻게 보면 넘 딱딱해질 수도 있지만 이걸 정리하고 가야한다. 그리고 주제가 이거면 여기로 가기 위해서 우린 여러 가지 방향으로 여러 길로 갈 수 있지만 결국 이 길로 가는 게 맞다, 이 장면은 전혀 엉뚱한 데로 튀는 것 같다, 이건 훨씬 모자란다 그렇게 끊임없이 얘기한다. 작가들에 따라 다른데 어떤 경우에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이만큼 바꿀게 하고 바꾼다. 어떤 때는 작가가 와 있는데 배우가 대사를 다르게 할 때도 있다. 토씨하나 바꾸면 안 될 때는 제대로 해줘야지, 그렇게 배우에게 말하기도 하고.

여자1 : 본인이 쓰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남자 : 있다. 있는데 능력이 안 된다. 힘들어.

여자1 : 하고 싶은 이야기나 만들고 싶은 공연이 있나.

남자 : 만들고 싶은 뮤지컬이 2개 있다. 하나는 지리산에서 살았던 호랑이와 어릴 때 그 호랑이를 보고 소심하게 자란 회사원에 대한 이야기. 호랑이는 섹시한 여배우여야 한다. 또 하나는 대형로맨스뮤지컬을 가장한, 아 근데 자꾸 얘길 하면…아니 얘기해야 책임지고 하겠지? 한창 촛불시위를 다닐 때 그때 굉장히 기록을 많이 했다. 너무 이상한 일들,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연극 10편이 나오겠는데? 싶었다. 맞고 막 그러는 상황 속에서 어떤 면에서는 한 발 빠져서 보는 시점도 있었고. 근데 너무 속상하게 잔뜩 써놓은 수첩을 잃어버렸다. 통째로.

여자2 :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시는 건가.

남자 : 그때 한참 찾아다녔다. 근데 도망치면서 뛰다가 주머니에서 빠진 것 같더라. 그래서 더 억울했다. 제목은 사랑의 묘약.

여자1 : 진부한데?

남자 : 제목이 진부하긴 하다. 물대포 맞으면서 어떤 여자를 봤는데 굉장히 섹시하단 생각을 했었다. 일단 물에 젖어 있었고, 이 현장에서 악다구니 쓰면서 소리 지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섹시한 거다. 저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야겠다. 근데 누가? 전경이. 아씨 근데 이게 말이 돼? 너무 짜낸 거 아냐? 해서 접고 있었는데 1년 딱 지나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그 무렵에 한겨레21 제목에 물대포 사랑의 묘약이라도 탔나? 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뜬 거다.(편집자 주 : 물대포에 묘약이라도 탔던 것일까 [2009.06.12 제764호]) 기사를 봤더니 정말로 전경과 물대포 시위하던 여자랑 사랑에 빠진 거더라.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서 당사자를 좀 만나게 해 달라, 해서 한두 번 통화도 하고. 아무튼 언젠가 하고 싶다. 해야지.

여자2 : 공연 하게 되면 보러 온 사람들 중에 당황하는 사람도 많겠다. 제목 보고 연인끼리 보러 갔는데 쩜쩜쩜 하는 후기 뜨겠는 걸.

 

 

여자1 :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남자 : 서른 살에 정말 괴로웠다. 생각해보면 졸업하고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디서 연출을 시작해야 하는 거지?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팀을 꾸리고 그러지 않으면.

여자1 : 들어갈 회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자 : 그러니까. 당장 회사에서 나 같은 애를 불러주는 것도 아니고. 조연출을 할 수밖에 없는데 한다고 계속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서른 살이 되면 뭐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어릴 때는. (사이)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은 거다. 삶의 의욕이 없는 거지. 하루하루 내가 뭐하고 살고 있는 건가, 싶고. 그렇게 힘들게 지내다가 이래저래 극복을 하고 회복을 하고 그러다가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봤다. 선생님 제 나이 땐 어떠셨냐고. 다 힘드셨다고 그러시더라. 그때 들은 얘기가 십 년만 한 번 버티라고.

여자1 : 서른은 너무 어린 것 같다. 서른이란 나이에 뭔가를 이루기에는.

남자 : 연출은 더 그렇다. 배우들 입장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데. 그래서 십 년만 버텨보지, 뭐. 십 년 후엔 내가 뭐 엄마한테 삥 뜯어서 통닭집을 하나 차리든, 커피숍을 하나 하든. 다행히 어머니 아버지가 잘 사는 건 아니지만 부양해야 한다거나 매달 돈을 보내드려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그렇게 해 온 게 한 오 년 됐다. 지금 해온 걸 보면 10년 후에도 연출 하고 있을 것 같고, 하고 싶고, 그렇다.

여자1 : 근데 참 이런 직업이 힘든 게,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지칠 수 있다, 십 년을 버틴다는 게. 그런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남자 : 음, 두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더라. 하나는 어떻게든 생계를 고정적인 수입을 만들어 놓고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고 일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쪽. 그게 아니라 배우나 연출이나 작가가 딴 짓 할 게 아니라 어쨌든 이 일을 해야 된다는 쪽. 배우 일이 아니면 돈 버는 일은 안 할 테야 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 혹은 과외도 하고 정말 배우란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아르바이트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나 같은 경우는 계속 가급적 공연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다. 조명 알바를 한다든가 다른 공연 연출로 가서 일을 돕는다든가 하면서.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나.

여자1 : 한편으로는 관련된 알바를 하는 게 오히려 더 힘든 부분이 있지 않을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긴데! 하는 생각도 들 테고.

남자 : 당연히 그런 생각이 든다. 근데 그런 것 같다. 옛날엔 그런 알바를 하는 게 힘들었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게 어쩌면 관객들을 만나면서 얻은 힘인 것 같은데, 어 나는 그래도 내가 연극판에 돌아와서 공연을 하고 연극을 만들면 날 기대해주는 관객들이 있고, 내 공연을 와주실 분들이 있고, 내 편이 되어줄 배우들이 있고, 난 여기 어쨌든 뿌리를 내리고 있고 발을 딛고 있다 하는 자신감. 그런 안정감이 있으니까 다른 데서 일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더라.

여자1 : 예술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못 벌까? (의문적으로)돈을 안 벌어야 그게 예술일까? 뭔가 어려운 것 같다.

남자 : 굉장히 많은 토론이 필요한 질문이다. 연극,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대중예술이니 돈을 벌어야지. 나도 대중예술가고. 근데 그 돈을 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관객과 만나야 하는 거고, 관객에게 내 상품을 팔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데, 티켓 값만큼의 가치를 제공해주고 싶다는 게 제 지론이다. 적어도 돈 아까운 느낌을 주고 싶지가 않다. 물론 쉽지가 않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열심히 해야 본전인 것 같고.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잡담이 점차 잦아든다. 여자1, 2, 가방을 챙겨 일어난다.

남자, 문 앞까지 배웅한다. 여자1, 2 퇴장. 작업실에 남는 남자. 암전.

 

 

인터뷰. 김화룡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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