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홈 > 人터뷰 > 비하인드
김태형 연출가의 다시 오지 않을 순간, 한 장면에 대하여
입력 2012-09-24 |

 

나는 어쩌다 본 한 편의 연극에 꽂혔다’. 722일 막을 내린 <모범생들>이란 제목의 연극. 극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하나의 공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모습까지 내겐 기분 좋은 자극이었고, 감동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모범생들>을 연출했던 연출가 김태형님을 인터뷰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다 

그의 작업실에 붙어 있던 <모범생들> 관련한 사진들에 새삼 그리운 마음을 느끼며 인터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관심 있는 사람에게 궁금해하는 질문을 기어이 하고 말았다 

죽어서 저세상에 갈 때, 이 세상에서의 기억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는데, 저세상에서는 그 기억만 계속 되새김질해야 하는데, 어떤 기억을 가져가고 싶냐는 물음. 내 엉뚱하고도 사소한 질문을 그는 우습지 않게 여겨 주었다.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가 , 하나 생각나는데, 너무 슬프다란 말로 입을 열었다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하고 있었던 일 중의 하나인데, 그때 기억을 가져갈 것 같은데요. 가장 오래 만났던 친구인데, 그 친구하고 있었던 그날 일을 가져갈 것 같은데, 선명하게 떠오르는 날이 하루가 있는데. , 이거 말하면 울 것 같은데.” 말끝에 괜히 웃음을 매단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리고 이어진 이야기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았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이란 일본 드라마를 추천해줬다고 한다. “그 친구가 일본 드라마 보는 거 막 무시하고 그랬는데, 보니까 너무 재밌다고 음악 너무 좋다며 막 그랬어요.” 연출가는 설득하는 사람이라는데 그는 그때 누군가의 마음을 설득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할 때의 기쁨. 서로 같은 방향을 보면서 웃을 때의 그런 충만한 마음. 그는 잘하진 못하지만 어릴 때 배웠던 바이올린으로 드라마 OST를 연주해 들려주었다 

그 친구가 해달라고 하니까, ~말 순수한 마음에, 아 얘가 좋아하니까 어떻게든 들려주고 싶단 생각이었어요. 악보 다운받아서, 악보도 잘 모르겠고 들은 대로 연주해서는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고.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하고 그러더라구요. 그랬었어요.” 그렇게 끝났더라면 해피엔딩의 추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헤어지고 몇 년 있다가, 박지선 이 나쁜 기집애, 우리 그 <모범생들> 작가 지선이가 그 친구랑 굉장히 친하거든요. 원래 친한 게 아니고 나 때문에 만나면서 친해져서 나보다 더 둘이 베프가 되고, 나는 헤어졌지만 둘은 계속 잘 만나고 이런 사이가 되었는데. 어느 날 무슨 얘기하다가 지선이가 그런 얘길 하는 거예요. 나랑 헤어지던 날, 아씨(울컥, 그는 아주 잠시 숨을 골랐다), 나랑 헤어지던 날, 제가 못되게 헤어졌거든요. 평생 죄받을 걸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사실은. 근데 그 친구가 헤어지고 나서 지선이를 찾아가서 펑펑 울면서, 다음날인가 그 다음날 그걸 들려줬다는 거예요. 나는 삑삑거리면서 연주를 막 하고 있는데, 녹음을 하다가 어느 순간, 연주를 하고 있는 나와 좀 떨어져서 거기다 대고 뭐라고 했던 거죠. 이 순간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식의 얘기를 해놨대요. 그걸 들려주면서 그걸 지웠다고. 갑자기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 얘길 들으니까. 행복했고,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고, 어쩌면 그 시기가 한참 우리 가장 행복한, 다시는 내 인생에 그런 순간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헤어지고 몇 년이 더 지난 어느 날, 함께했던 어떤 순간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특별한 순간이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얘기. 그제야 어쩌면 그때가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었고, 자신의 인생에서도 다시는 오지 않을 그런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나고 난 뒤에야 , 그때 참 좋았었구나싶은 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어떤 날들 

생각할수록 아프고 그렇게 된 건 없어요. 근데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즐거우면서 괴로우면서 그렇게 지내지 않을까 싶네요.” 하는 말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맺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거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여전히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냥 그때는 이미 지나갔고 나 역시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그 사실이 문득 쓸쓸해지는 그런 것. 

다소 쓸데없어 보이는 내 질문에 대한 그의 진솔한 대답이 반갑고 고맙고 민망하기도 해서 나는 괜히 주절댔다. 우리가 돈이나 사회적 성공에 대해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런 질문에서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대답들을 할 것 같다고 어쩌고저쩌고. 그는 비슷한 거라며 게임 하나를 얘기했다. 

황희원(<모범생들> 무대감독)이 알려준 게임인데, 이 사람에게 가장 선물해주고 싶은 걸 얘기하는 거예요. 현실적인 것, 현실적이지 않은 것, 배틀로. 그중에서 나 뭐 가질래 고르는 거예요. 이거 하면 희한하게 물질적인 그런 건 별로 안 나와요. 물질적인 게 나와도 이 사람에게 필요해 보이는 게 나와요. 집도 그냥 집이 아니라 이 사람이 원하는 집…… 무슨 능력을 준다든가……. 듣고 있으면 좋죠. 이거 하면 되게 행복해져요.” 

재밌는 게임이었다. 나도 상상을 해봤다. 누구에게는 이걸 주고, 누구에게는 저걸 주고…… 생각하다 보니 정말 행복해졌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내게 무얼 주고 싶어 할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내게 이런 걸 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아니 그런데, 저세상에 가져간 하나의 기억만 되새김질해야 한다는데, 왜 그는 괴로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기억을 가져간다고 하는 걸까. 알 듯 모를 듯, 문득 그의 직업이 연출가라는 사실이 새삼 되새겨졌다 

무대 위의 수많은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연출가. 연출가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무엇 혹은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한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오롯이 전달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울림을 줄 때 보람을 느낄 것이다. 연출가인 그가 저세상에서 무한 반복 재생을 감당하겠다는 그의 한 장면은 무대 밖 그의 인생에서 그가 만들어낸 최고의 장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만들어냈기에 더 값진 그 장면은 스스로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최고의 순간을 선물한 게 아니었을까 

나는 앞으로 무대 위의 여러 멋진 장면들을 만들어낼 연출가인 그가 기대된다. 그 역시 십 년 후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묻자 지금처럼 연출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단언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지만, 자신의 미래에 여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무한 신뢰를 보내는 편이다. 미래에 정말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여전히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미래에도 하고 있을 것 같은 그 마음. 자기 일에 대한 어떤 확신 혹은 어떤 중심 같은 것에는 그저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연출가로서 그가 만들어낼 여러 공연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만들어낼 멋진 장면들에도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이 글을 맺는다. 

 

. 김화룡(dreamidea85@daum.net)

편집.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관련기사
영화 <펀치 드렁크 러브>와 후카츠에리 - 연출가 김태형
[연극연출가]김태형, 3장 연출의 가장 큰 무기는 설득력
[연극연출가]김태형, 2장 능력에 비해 운이 좋아야 계속 할 수 있..
[연극연출가]김태형, 1장 모범생 삶에서 가장 재미있던 일
  





FREE뷰 人터뷰 소식 NOWhere 커뮤니티
미리맛보기
다시돋보기
보물찾아보기
Job담
나이런사람이야
비하인드
개인의 취향
글빵집 이야기
연예계 뉴스
공연정보
실시간 짹짹
한장의 추억
김가영의 짹짹
쓸데없는 고찰
용식이웹툰
詩식코너
리얼버라이어티
공지사항
이벤트
자유게시판
Writer를 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