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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
입력 2016-10-13 |

 

가난하신분 알티해주세요

오늘 트위터에서 이 문장을 보고 냉큼 알티를 하려다 잠깐 바빠서 다른 일을 하느라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알티를 하려다 멈칫, 잠깐, 나는 가난한가?

가난이란 무엇일까. 무엇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는 사전에 내려진 정의를 읽는 게 빠른 법. 네이버 검색창에 가난을 검색해본다. 가난: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 그렇다면 살림살이란 무엇이고 넉넉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인가. ‘살림살이란 살림을 차려서 사는 일이고, ‘살림은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란다. 또한 넉넉하다는 살림살이가 모자라지 않고 여유가 있다는 뜻이고, ‘여유란 물질적공간적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란다.

그렇다면 나는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은가. 귀찮아서 거르는 게 아니라면 돈이 없어서 끼니를 굶는 일은 없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45만 원짜리 원룸에 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5평 남짓한 공간에는 책상, 책장, 옷장, 침대, 냉장고, 세탁기, 인덕션, 전자레인지 등 웬만한 살림살이가 다 있다. 있는 가구만 생각하면 34평은 될 것만 같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으로 월세도 내고 남자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종종 영화나 뮤지컬 같은 문화생활도 즐기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옷이나 신발 등도 산다. 그렇다면 나는 가난하지 않은가. 하지만 한 끼 식사로 3만 원짜리가 아니라 6천 원짜리를 먹고, 미래를 위한 저축이나 적금은 들 형편이 못 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월세 걱정에 참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가난한가.

 

얼마 전 배우 김혜수가 여가 생활에 대해 말한 인터뷰가 화제였다. 김혜수는 어떤 작가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의 책에 꽂혔다면 저는 그 작가가 쓴 책을 전부 사서 읽어요. 국내에 번역 출간되지 않은 책이라면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직접 구매해요. 그러곤 따로 번역을 맡겨서 받아 읽죠.”라고 말했다. 읽고 싶은 외국 작가의 책을 개인적으로 번역을 의뢰해 읽는다니. , 돈을 그렇게 쓸 수 있구나. 돈이 삶을 정말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구나, 뭔가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스스로가 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돈이 많으면 집도 차도 많이 살 수 있는 만큼 책도 갖고 싶은 만큼 많이 살 수 있겠다고 쉽게 상상할 수는 있어도 구체적으로 출간되지 않은 책을 번역까지 맡겨 읽을 수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가난한 편이 부유한 편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작활동에도 도움이 된다고 믿는 쪽이었다. 결핍이 욕망을 낳는 법이니까. 하지만 정말 그런 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안일한 자위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창작활동을 위한 자극에는 다양한 문화생활이 필요할 텐데 책이나 영화를 보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이 들지 않는 방법도 찾으면 있을 테다. 하지만 그조차 시간은 필요한데, 그 시간이 없다. 왜냐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자꾸 이직을 생각하는 이유도 내가 시간을 갈아 돈을 벌고 있는데 그리 많지도 않은 월급을 받겠다고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시간을 갈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다. 차라리 더 가난해지더라도 조금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문.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원룸에 사는데, 실은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난 103,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개천절날, 하늘이 열렸다는 그날, 반지하 원룸으로 이사를 했다. 이 작은 방 안에 옵션으로 웬만한 가구가 다 있다는 것은 어쩌면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해 테트리스 조각마냥 맞춰진 가구들. 드럼세탁기는 싱크대 아래에 쏙 들어가 있고 전자레인지는 냉장고 위에 있다. 옷이 많은 사람이라면, 책이 많은 사람이라면 모자랄 작은 옷장과 작은 책장. 싱글치고도 작은 침대며 욕조 없는 화장실은 누군가에게는 분명 모자라는공간일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옷장과 책장, 책상 서랍엔 여유가 있다. 내게는 피로한 내 몸을 누일 이 공간이 정말이지 모자라지 않고 여유가 있다. 그래, 이건 슬픈 일이 아니라 도리어 기쁜 일이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냉장고가 아니라도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 냉장고처럼, 소박할지언정 나는 혼자서 제 기능을 다 하면서 살림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가난하지 않은 게 맞는 걸까.

 

 

얼마 전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 채팅방(줄여서 단톡방)에서 이번 인생은 망했다올림픽이 열렸다. 작가에 대한 꿈과 돈을 벌기 위해 다니고 있는 직장에 대한 스트레스 그 꿈과 현실간의 괴리, 남자친구와의 작은 트러블 등으로 고민하는 나는 동메달도 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금메달을 너끈히 딸 만큼의 고생 중인 친구의 이야기에 빗대 내 삶이 더 낫구나 생각하지도 않았다

나는 서른두 살이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아기도 낳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대학생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대학을 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생을 살아오는 동안 내가 깨달은 것은 섣불리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경계하는 것은 타인을 배려한다고 내뱉는 친절한 말들이다. 그러한 말들 속엔 칼날이 숨겨 있어서 듣는 이의 마음을 벤다. 갑자기 매서워진 찬바람처럼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결혼해야지. 늦어도 서른다섯 전에는 아기를 낳아야지. 500만 원 가지고 아이를 키우는 건 턱도 없어. 아무리 사랑해도 원룸에서 신혼을 시작할 수는 없지.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날아가버린다잖아. 쉽게 내뱉는 얘기들. 하지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하는 거고 아기는 부부의 선택이면서 맘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고 월 500이 없이 아이를 키우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왔을 때 사랑으로 함께 이겨내면 가난이 창문으로 다시 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상대적인 결핍으로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같다. (물론 물질적으로도 그다지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월 천만 원을 버는 부모가 월 300만 원을 버는 부모보다 해줄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장난감도 더 많이 사줄 수 있고 우수한 교육을 더 받게 해줄 수도 있다. 근데 정말 그쪽이 더 삶을 풍요롭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의 살림을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있어야 행복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럼 그 최소한이란 또 무엇일까.

이사한 이후 나는 퇴근길에 무언가를 자꾸 사고 있다. 어느 날엔 수세미와 주방세제와 고무장갑을 샀고, 어느 날엔 세숫대야와 화장실용 쓰레기통을 샀고, 어느 날엔 냄비와 과도를 샀다. 조만간 수저와 프라이팬과 뒤집개와 도마도 사야 할 것 같다.

혼자 사는데도 뭐가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은지 모르겠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참치와 식용유 등을 챙겨주고, 라면포트와 휴지통을 사주고, 이마트 상품권을 줬다. 남자친구가 추석에 받은 스팸세트를 줬고 언니가 샴푸와 바디워시를 줬고 친구가 택배로 자취방에 어울리지 않는 커피머신을 포함하여 각종 생필품들을 보내줬다.

아마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다이소에서 2만 원어치를 사는 대신 이마트에서 20만 원어치를 샀겠지. 아니 백화점에서 가격 생각하지 않고 제일 예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샀겠지. 아니아니 애초에 작은 원룸을 채우기 위해 장을 보는 일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한 주변에서 이렇게 챙겨주는 것을 받으면서 고마워하는 경험 역시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가난하긴 하지만 괜찮다.

나는 지금이 좋다. 더 좋은 환경이 있겠지만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 어쭙잖은 자위일지 모르겠다. 사실은 나도 아직은 삶의 기준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남들처럼 사는 게 중요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살면 된다고 말하면서도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엄마로서의 삶도 살아보고 싶다. 그 정도의 삶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에서는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아 갑갑해지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가난은 죄인 시대다. 가난한 부모는 죄인이 된다. 근데 정말로 그래야 하는가. 단톡방에서 우리는 열심히 사는데 왜 이렇게 다들 먹고살기가 힘드냐고 말했더랬다.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남에게 사기 안 치고 열심히 사셨는데 가난하다. 그치만 부모님은 죄인이 아니다. 언젠가 내 자식을 낳게 된다면, 내 자식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결론도 없는 이런 글을 쓰다니, 정말이지 가난한 자의 여유가 아닐 수 없다. 이직할 곳은 없나 새로 알바할 것은 없나 찾아보려고 했는데. 15일은 월급날이고 현재 통장 잔고는 바닥이다. 가난하신분 알티해주세요. 아 다시 그 글을 찾아 알티를 해야 할 것만 같다.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사진=글과 관련이 없으나 상관 있는 내 방 물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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