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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꿈꾸지 않아도 좋다
입력 2013-02-04 |

 

월요일과 화요일 밤을 TV 앞에 앉게 만들었던, 아이구 남순아 너 이리why새끼야, 박흥수 오정호 이이경 이지훈 hi새끼들 좀 봐라, 하게 만들었던 KBS2 <학교 2013>이 지난달 28일 종영했다. 

승리고등학교 2학년 2반 학생들은 겨울방학식을 했고, 방학이 끝나면 이제 3학년으로 올라갈 것이다. 단 한 사람, 오정호(곽정욱 분)만 빼고. 

사실 내게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때가 없었다. 2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1학기 기말고사 후 자퇴하려는 내게 당시 담임선생님은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라고 방학동안 사회생활을 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며 만류했다. 생각해보면, 부임한 지 첫 해였나 두 번째 해였나 그랬던 그 선생님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다. 당연하게도, 그때 나는 그녀보다 더 어렸다. 그땐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자퇴를 보류한 채 나는 여름방학동안 분식집 서빙으로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시급 2500. 당시엔 잘 몰랐지만 지금 알아보니 그 당시 법정 최저임금은 시급 2100원으로, 적게 받은 건 아니었던 셈. 나는 먼저 일하고 있던 언니보다 더 잘한다고 칭찬을 들을 만큼 금방 일을 배웠다.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손님께 인사하는 목소리가 작다고 며칠간 사모님이 뭐라고 하신 것 외에 꾸중을 들은 기억도 없다. 

담임의 예상과는 달리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내 생각은 1%도 달라지지 않았다. 일은 힘들다기보다 재미있었고, 그렇게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것이 기뻤다. 물론 떡볶이인지 라볶이인지 헷갈렸고, 1인분인지 2인분인지 봐도 구분하기 힘들어 실수하기도 했으며, 손님에게 음식물을 엎질러 욕을 먹고 울컥 눈물이 난 적도 있다 

하지만 한 달 남짓 짧은 알바 기간 동안 내가 느낀 것은 열여덟 살이 학교 안이 아닌 밖에서, 학생이 아닌 비학생(?)으로 겪는 생활이 제법 만만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루 쉬고 학교로 가 자퇴서를 제출했다.

<학교 2013>에서는 자퇴서를 내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남순(이종석 분)이 법정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그마저도 떼이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듯 TV 속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10대들의 모습은 대개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는 충실하지 않은 채 유흥비를 모으기 위해 일한다거나, 그마저도 악덕 사장에 의해 돈을 떼인다거나 하는 식이다. 내가 만난 사장님들만 좋은 사람이었던 걸까, 나를 부려먹고 돈을 주지 않은 사장은 여태 없었다. 시급이 오르고 명절 날 소위 떡값을 챙겨준 사람은 있었어도 

물론 청소년들의 노동력을 값싼 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착취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이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고, 세상은 험하지만 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아르바이트를 나쁜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유흥비를 모으기 위해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아니 훔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부족한 용돈 마련을 위해 노동을 해 스스로 돈을 버는 것은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칭찬해줘야 할 일이 아닐까. 정호를 위해 이이경(이이경 분)과 이지훈(지훈 분)이 뷔페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처럼.

 

 

<학교 2013>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며 학생들에게 성적보다 대학보다 꿈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좋은 얘기다. 누구나 꿈을 꿔야 한다. 꿈꿀 권리가 있다. 열여덟 살, 학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열여덟 살은 꿈꾸기도 참 좋은 나이다. 한데, 꿈꾸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 아닌가. 

모두가 의사 변호사 교사 연예인 등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직업을 정하는 것이 꿈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꿈이란 게 무엇일까. 국어사전에서 을 찾아본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란다.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도 기대를 갖게 만들던 내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열여덟 살, 내 꿈이 뭐였더라 

사실 학교를 그만두기 전, 수업 시간에 집중해 있는 시간보다 자고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깨어 있을 때조차 수업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딴 생각을 하면서 교과서에 낙서하고 있기 일쑤였다. 소설 <오래된 정원>을 읽고는 교과서에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어도 열심히 살면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올까따위의 글들을 끄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러한 세상을 꿈꿨던 것 같진 않다 

오히려 나는 열심히 살면이라는 말 속에 무기력한 성실함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끼며 그 말을 싫어했다. ‘열심히라는 말은 그저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의 힘없음을 위로하기 위한 덧없는 수사일 뿐이라 생각되면서, 미련하고 또 미련하게만 느껴졌다. 

일단 나는 돈을 벌고 싶었다. 돈을 벌려면 일을 해야 했고, 학교에 다니면서 그러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남들 다 겪었던 IMF 때문에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을 뿐더러, 학교 공부도 그다지 재미없었다. 학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자, 하루빨리 학교를 그만두고 독립해 살고 싶었다 

대학은 가고 싶었다. 어차피 부모님 형편에 대학에 합격한다고 해도 등록금을 비롯한 지원이 힘들 것은 불을 보듯 뻔했고, 그럼에도 부모님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빚을 내서라도 해주긴 하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받으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돈도 받지 않고 말도 듣지 않겠다고 호기롭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내가 벌어 내가 사는 거야. 1인 독립 가구가 되는 거지. 검정고시를 치고 수능을 봐서 대학은 가보자. 뭐 떨어지면 재수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대학만이 정답은 아닐 테니까. 여름방학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돈으로 고시원을 얻어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남들보다 일찍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후 대학을 갔고 졸업을 했다. 학자금 대출을 아직까지 갚고 있는 걸 보면 생각했던 것만큼 학교 밖 사회는 만만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일을 해온 것 같은데 통장에 잔고가 없는 걸 보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꿈은 내 꿈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열여덟 살에서 십 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내 꿈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고, 희곡도 뮤지컬 대본도 쓰고 싶다. 극단도 만들고 싶고, 공연도 제작하고 싶다. 글 쓰는 사람들이나 배우들을 양성하는 일도 언젠가 하면 좋을 것 같다. 오프라인 글빵집 카페를 차려서 고품격 문화공간으로 키우고도 싶다. 가족들에게도 잘하고 싶고, 멋진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도 싶다. 무궁무진한 꿈들은 나를 부풀게 만들지만 그 꿈들이, 그것들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렬한 열정이, 나를 살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인 꿈들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인 이러한 내 꿈들은 꼭 이뤄지지 않아도 괜찮다. 꿈꾸는 일들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내가, 내 삶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그렇듯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내게도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목숨이 두 개만 되어도 죽었을 지도 몰라 싶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마 더한 순간도 앞으로 계속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고 무너지진 않는다. 아니 무너지더라도 곧 일어날 테다. 나는 진짜 행복이란 기쁘고 즐거운 일이 가득한 것이 아니라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괜찮은 상태라는 걸 안다. 슬픔과 아픔을 통과시키면서, 절망 안에서도 재미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2013년 내 꿈은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더 즐겁게 살고 싶다는 거다. 하긴, 즐겁게 살려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제는 열심히라는 말도 싫지 않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하지 않으면 즐거움도 작은 법이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국어만 잘해도 안 되고, 국영수사과 중요 과목만 잘해도 안 된다. 내신 성적만 좋아도 안 되고, 수능 시험도 잘 봐야 하며, <학교 2013>의 송하경(박세영 분)이 그랬듯 논술대회 수상 같은 스펙까지 쌓아야 한다. 때로 이강주(류효영 분)와의 우정보다 그러한 스펙을 더 신경 써야 할 만큼. 

점수 1, 2점에 등급이 결정 나고 등급에 따라 대학이 결정 난다. 근데, 대학에 따라 인생도 결정 나는 건가? 2반의 반장이었던 김민기(최창엽 분)날 때부터 스무 살이면 좋겠어요. 어차피 그 전까진 없는 인생이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된다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시 대학 성적과 토익 점수 등 취업을 위해 달려야 하는 빡센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세상은 자꾸만 더 열심히 살라고 말한다. 더 열심히 달리지 않으면 뒤처지고 끝내는 실패하고 넌 루저가 될 거라고 사방에서 속삭인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며 무언가 더할 것을 강요한다.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세뇌에 취해 살아가게 만든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괜찮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괜찮아, 하고 속으로 네가 더 열심히 하면 돼, 하고 있는 셈이다. 진짜 괜찮은 것은 꿈이 없어도 괜찮은 것 아닐까. 열여덟이면 꿈꾸기도 좋은 나이지만 꿈같은 거 없어도 좋은 나이다. 인생의 거창한 목표나 성공에 대한 야망 같은 거,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잠시 접어둬도, 까짓 거 뭐 어떤가.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그러니까 그 남들은 누구며 뒤처진다는 그 기준은 당최 무엇이냔 말이다. 

인생은 기록이 중요한 마라톤도 순위가 중요한 쇼트트랙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 기준이 아니라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책임지면서 살면 된다.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배워 성장한다면 얼마든지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오정호는 마지막 인사로 이렇게 말했다. “나쁘게는 안 살게요라고. 그래, 학교 안이어도 좋고, 학교가 아니어도 좋다. 어디에서든 나쁘게만 살지 않는다면, 꿈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다. 무언가 재미난 일을 찾고 그 안에서 기쁨을 얻으며 때로 흔들려도 즐겁게 살아간다면, 열여덟 살,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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