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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맺기’에 주목하는 예능, 새로운 가족의 탄생
입력 2013-04-02 |

 

친구가 많다는 것은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스무 살이 되어 만난 중학교 때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와 진짜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학 때 만난 친구들과는 술잔을 기울이며 사회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건 참 힘든 일 같다고도 말했더랬다. 

물론 학창시절을 지나오면서 지금까지 잘 만나고 있는 친구도 있고, 만나진 않아도 여전히 연락을 하는 친구도 있고, 그 사이 떠나간 친구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사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관계는 천천히 멀어져버렸다. 

진짜 딱 서른 즈음에가 되고 보니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제법 귀찮은 면이 있다. 있는 관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마당에,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 맺기란 피로감을 안긴다. 그러니까, 단순히 밥 먹는 관계나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종종 만나 밥이나 술을 함께 하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이를 새롭게 만든다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아니, 쓰면서 생각해보니 오래된 친구들과도 그러한 관계를 맺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 것도 같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고생 올림픽을 여는 게 아니라면, 그럴 때 술자리 안주로 씹어 삼키는 얘깃거리가 아니라면, 진짜 고민은 점점 더 나누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은 천진하고 그렇기에 잔인한 면도 있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게 어른들보다 훨씬 쉽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속마음을 감추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에게 아부 섞인 칭찬을 하고, 듣기 싫은 이야기에 고개 끄덕이며 들어주고, 공감하지 않는 말에도 미소하며 반응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른답다고 평가된다.

어른이 될수록 예의와 교양을 갖추게 되지만 그것이 진정한 관계 맺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한 화장술처럼 이용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옳고 그른 것으로 세상을 구분하고, 윤리적이 되고자 한다. 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번지르르한 말들로 진심을 감추면서 쉽게 깨질 관계를 필요에 따라 맺는다. 서두가 길었다. 문득 짹짹대고 싶었던 건, 요즘 화제로 오르내리는 KBS2 <인간의 조건>MBC <나 혼자 산다>를 통해 그러한 관계 맺기의 중요성 혹은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것.

 

 

<인간의 조건>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요소를 소거하면서 그 안에서 달라지는 인간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엿보는 형식의 프로그램이고,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방송 이후 정규편성되어 2회까지 방영된 <나 혼자 산다>는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담으면서 1인 가구의 싱글라이프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MBC <무한도전>이나 KBS2 ‘12처럼 이들 프로그램에도 남자들만이 출연한다. <인간의 조건><무한도전>이 오랜 시간 걸쳐 이뤄 낸 멤버들 간의 끈끈한 우정을 꽤 단시간에 비슷한 모습으로 표현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의 조건> 멤버들(김준호, 김준현, 박성호, 양상국, 정태호, 허경환)<개그콘서트>라는 KBS2 간판 코미디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회사를 다닌다고 다 친한 것이 아니듯, 같은 프로그램을 한다고 이들이 다 친한 것은 아니다. 되레 방송 초기 김준호와 박성호처럼 쉽사리 풀리지 않는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는데, 방송은 이들의 모습을 억지 화해시키지 않고 그대로 담아내면서 더 진정성을 갖추게 된다. 

지난주 <인간의 조건>에서는 자동차 없이 살기의 연장선상에서 대체에너지를 이용한 삶을 실천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 프로그램은 환경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또한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주목한다. 그날 방송에서 양상국과 김준현은 늦은 녹화를 마치고 눈길에 고생할 허경환을 위해 수소 자동차를 끌고 허경환을 데리러 갔다. 무뚝뚝한 허경환은 우리 가족밖에 없네라며 미소하고, 양상국도 동기 아이가하며 흐뭇해했다. 

함께 전기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다닌 박성호와 정태호도 이전보다 더 친해진다. 자동차 없이 생활하는 초기에는 렌트한 왕발통’(세그웨이 : 전기로 작동하는 이동수단으로 균형을 이용해 서서 탄다)을 과시하던 김준호는 왕발통이 없었으면 멤버들과 더 친해질 수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한다 

이미 개그맨이라는 직업과 한 프로그램 안에서 식구로 묶였던 이들은 <인간의 조건>을 통해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한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고, 끼니를 챙기는 유사 가족 관계가 되는 것이다. 허경환의 말처럼 회가 거듭될수록 가족이 되는 느낌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무한도전>이나 ‘12을 대표적으로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 리얼 버라이어티는 연예인들이 다수로 나와 게임이나 미션 수행을 하면서 그 안에서 캐릭터를 형성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웃음과 함께 우정을 담아냈다. 최근 등장한 <인간의 조건><나 혼자 산다>는 그러한 프로그램과 궤를 약간 달리하면서 거창한 무언가를 생략한 채, 인물들 그 자체에만 집중한다. 

캐릭터 형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도, 보다 에너지 넘치는 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최대한의 꾸밈을 자제한 채 주어진 간결한 컨셉 안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것이 단순히 자다 깬 부스스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룰 만한 소재가 교양의 형식으로 예능이 되고 있다. 출연자는 연예인이지만, 이들은 흔히 연예인이라고 할 때의 거리감이 적은 친근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럼에도 매 순간,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사실은 드러난다. 때로는 대중들이 그들을 연예인이라 알아보지 못한다는 방식으로.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 특성상 김광규, 김태원, 노홍철, 데프콘, 서인국, 이성재의 혼자 있는 모습을 주로 담지만, 그 모습을 함께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통해 결국에는 그들이 타인과 혹은 무지개라 명명하며 회원님이라 부르는 서로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에 주목한다. 

김광규는 등이나 허리를 다치면 파스 붙이기가 힘들다 말하고, 데프콘은 옷걸이 설치하는데 수평 맞추기도 쉽지 않다고 말한다. 김태원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수리하러 온 기사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전구를 갈며 혼자 다치면 119 불러야 돼라고 중얼댄다 

무지개 회원들의 싱글라이프는 공감을 자아내고, 그들이 서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생필품을 받기도 하면서 동질감을 느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그들에게 친근감과 유대감을 갖게 된다.

 

 

나 혼자 산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당당한 독립 선언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쓸쓸한 고백일 수도 있다. 또한 그 말을 듣는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동정심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어느 한쪽으로의 일방적인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일에 양면이 존재하듯 장점과 단점이 고루 있음을, 장점이 때로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때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함을, 묵묵히 보여준다. 아니 결국은 그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산다는 것이라 얘기한다 

<인간의 조건> 또한 마찬가지다. ‘자동차 없이 살기를 통해 자동차는 매연을 유발하는 나쁜 것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걷기와 대중교통을 이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보여주면서도, 비와 눈 때문에 거리에서 고생해야 하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멤버들은 서로 조금씩 더 가까워진다. 결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관계 맺기.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인간은 누구나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한다. 남편이나 아내가 있든 없든, 자식이 있든 없든, 부모님이 있든 없든, 그들과 같이 살고 있건 말건 결국엔 혼자 사는 것 아닌가 

하지만 또한 인간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근원적인 고독은 독립된 채로 유지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혈연으로 맺지 않은 새로운 가족은 그렇게 탄생하고 있다. 이는 유행처럼 번진 소통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사람은 다들 소통하고 싶어 하지만, 또한 누구와도 완전히 소통할 수 없음을 깨닫고는 한다. 좌절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만큼은 이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가족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다.

환경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실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일 터. 혼자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해 탐구하는 것 역시 결국은 함께 잘 살아가는 법에 대한 연구일 것이다. ‘인간의 조건에 대해 고민하면서 나 혼자 산다해도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함께 잘 살아가면 좋겠다 

 

. 김가영(kimka02@glebbangzip.com)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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